
프랑스의 소설가 뤼도빅 에스캉드의 소설 <밤의 몽상가들>이 출간됐다. 알마 제공
밤의 몽상가들 |
뤼도빅 에스캉드 지음 |김남주 옮김 |알마 |216쪽 |1만6800원
“전면에는 몽파르나스 타워가 있고 그 너머에는 에펠탑, 북쪽으로는 사크레쾨르 성당, 서쪽으로는 팡테옹의 돔이 로마의 환영처럼 파리 풍경 속에 자리하고 있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불 밝힌 창들의 희미한 빛이 도시를 밝히고 빛 하나하나가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는 지붕 위의 그런 가벼움 덕택에 관조의 시간을 즐기고, 마음의 걱정을 내려놓는다.”
자정 무렵의 파리 생제르맹데프레 구역, 고요한 어둠 속에서 두 남자가 그림자처럼 움직인다. 등반화를 신고 하네스와 하강기, 랜턴까지 준비한 그들은 파리 기네메르 9번지에서 시작해 조용히 성당 광장으로 향한다. 성당에 잠입한 이들은 경사면을 오르고 예배당 사이를 지나 탑 꼭대기까지 올라간다. 랜턴 불빛으로 길을 밝히며 마침내 탑 꼭대기 테라스에 올라선 이들의 눈앞에 파리의 야경이 펼쳐진다. 높은 곳에서 바라본 파리는 더는 한낮의 익숙한 거리가 아닌 끝없는 상상과 가능성을 펼쳐내는 또 다른 세계가 된다. 지붕의 경계를 넘어가는 그들은 마치 도시를 탐험하는 모험가 같다.
소설 <밤의 몽상가들>은 작가의 자전적인 경험을 담은 소설로, 도시 속에 얽매인 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속박된 일상과 꿈을 ‘도시 등반’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통해 들여다본 작품이다. 주인공 뤼도빅은 파리의 오래된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한다. 두 아이의 아버지인 그는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기 위해 출퇴근 시간을 줄이고자 교외를 떠나 파리로 이사한다. 그러나 높은 임대료와 획일적인 공간들이 주는 답답함은 그를 점점 더 지치게 만든다.
그러던 어느 날, 뤼도빅은 새로 이사한 집 옆 건물에 동료 뱅상이 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흥미롭게도 뱅상에게는 파리의 지붕 위를 등반하는 독특한 취미가 있었다. 뤼도빅은 그의 초대를 받아 함께 ‘도시 등반’에 나서게 되면서 도시의 갑갑한 현실에서 벗어나게 된다. “지붕 위 원정의 가장 좋은 순간들 중에는 몸이 무거운 길에서 빠져나오고 정신은 일상생활의 촉수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처음 몇 미터의 순간이 있다. 나는 매번 똑같은 흥분을 느끼고, 그 감정은 매번 첫 모험 때 느꼈던 흥분만큼이나 강렬하다. 높은 곳을 오르는 일은 중독이라기보다는 우선순위의 순서를 새로 세우는 거듭되는 도취, 반복되는 전율이다. 스스로에게 권한을 주고 스스로를 일으켜세우고 스스로를 진정시킨다.” 그들의 여정은 단순히 지붕 위를 오르는 물리적 행위가 아니라, 시스템에 매여 있었던 자신의 주체성을 되찾으려는 상징적 시도처럼 보인다. 이때 지붕 위에서 바라본 파리는 냉혹한 도시가 아닌, 낭만적이고 풍요로운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밤의 몽상가들>. 알마 제공
그러나 지붕 위에서의 자유로운 탐험과는 달리, 지붕 아래의 현실은 여전히 차갑고 무겁다. 주거 대출의 조건은 까다롭고 복잡하기만 하며, 신용불량에 대한 두려움은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붙는다. 평온한 순간에도 알 수 없는 불안이 밀려오고, 잠들지 못한 채 웹서핑을 하다 보면 결국 재난 동영상을 보다 우울에 휩싸이게 된다. 뤼도빅은 도시의 각박한 현실에 치이는 생활 속에서 아내 안나벨라를 떠올린다. 안나벨라와 그는 잘 통하고 여전히 서로를 배려하지만 결국 이혼에 이르게 됐다. “나는 파리가 젊은 커플의 생활을 망쳐버린 것이, 적절한 주거 공간을 확보하는 동시에 아이들을 교육하고 직업상의 경력을 이어가기 위한 잔인한 투쟁으로 그들을 내몬 것이 원망스럽다. 사랑이 어떻게 그런 지옥을 버틸 수 있을지 나는 모르겠다.” 그의 독백은 숨 쉴 틈 없는 도시에서의 삶이 관계를 어떻게 고사시키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현대 사회의 가속화된 리듬에도 깊이 고민한다. “현대사회의 사람들은 점점 더 시간이 부족하다고, 시간을 다 써버렸다고 느끼게 된다”라는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우리 커플에게 커플로서의 힘을 느끼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시간이 부족했다는 느낌 말이다”라며 공감을 표한다.
뤼도빅은 뱅상과 함께 지붕 위에서 “진짜 삶”을 찾아 매일 밤 새로운 모험에 나섰지만, 이내 이웃들과의 불편한 갈등과 치솟는 주거비 부담은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된다. 그들이 꿈꿨던 “진짜 삶”은 결국 대낮의 현실을 바꾸지 못했고, 작품의 제목인 “몽상”처럼 일종의 비현실로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지붕 위에서 경험한 순간들은 단순한 일탈을 넘어 도시의 억압적인 시스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작품 속 뤼도빅이 추구한 “진짜 삶”은 화려함이 아닌, 소박한 여유와 새로운 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 여백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같은 단순한 소박함마저도 많은 이들에게는 닿지 않는 꿈처럼 멀게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우리는 바람을 피해 앉는다. 나는 샴페인의 뚜껑을 열어 병을 뱅상에게 넘긴다. 밤에 높은 곳에 올라와 있을 때 나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해방감을 느낀다. 낮 동안의 관례적인 일상에서 내가 접근할 수 없는 곳을 정복한 느낌이 든다. 뱅상은 그의 헤드랜턴에 불을 켜고, 섬세한 박엽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랭보의 작품을 눈으로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