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특검법 31일 ‘거부권’ 행사 여부 고심
경제사령탑인데 추경 논의 주도 안 해
여·야·정 협치도 교착 상태
“정치 갈등 길어지면 경제 부정적 영향”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재정경제금융관 오찬 간담회를 갖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설 연휴를 지나고 나면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또다시 리더십 시험대에 선다. 최 권한대행은 12·3 비상계엄 사태로 혼란스러운 국정을 수습하고, 경기침체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할 숙제를 안고 있다. 설 연휴 이후 내란 특검법 재의 여부 결정, 추가경정예산(추경)안 편성, 여·야·정 협의회 실무협의 등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최 권한대행의 선택에 따라 위기를 넘길 수도, 위기 대응 골든타임을 놓칠 수도 있다.
최 권한대행은 설 연휴 직후인 오는 31일 국무회의를 소집해 2차 내란 특검법 재의요구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최 권한대행은 지난 10일 “여야가 합의해 위헌적 요소가 없는 특검법을 마련해달라”고 말한 이후 추가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여당과 대통령실은 다음달 초 윤석열 대통령 기소가 임박한 상황에서 ‘특검 무용론’을 제기하며 법안 재의를 요구했다. 반면 야당은 “정치적 불확실성을 신속히 제거하는 것이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며 특검법 공포를 압박했다. 정부 관계자는 “최 권한대행이 재의 여부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 권한대행은 추경 편성 결단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계엄 사태 여파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지난해 4분기 한국 경제가 0.1% 성장하는 데 그쳤다. 한은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9%에서 1.6~1.7%로 낮추면서 경기 대응을 위한 신속한 추경 편성을 촉구했다. 최 권한대행은 여·야·정 협의회를 통해 추경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추경이야말로 경제사령탑으로서 주도적으로 논의를 이끌고 가야하는데 한발 물러서 있는 모양새다.
추경 편성 시기, 내용, 규모를 둘러싼 논쟁도 이어지고 있다. 시기 면에서 정부·여당은 ‘선 예산 집행·후 추경론’을, 한은·야당은 ‘선제적 추경론’을 주장하고 있다. 야당이 요구해온 ‘지역화폐·민생회복지원금’ 예산을 포함할지도 내용상 관건이다. 기재부가 추경안에 지역화폐 예산을 편성하지 않고, 국회에서 지난해 말 삭감된 예비비·특수활동비만 원상 복구한다면 야당이 크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추경 규모가 얼어붙은 내수에 활력을 주기에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여야 협치를 이끌어내는 것도 과제다. 여·야·정 협의회 실무협상이 추경 편성에 대한 이견으로 교착상태에 빠진 상황이다. 여야 정책위의장 간 실무협의가 지난 22일 ‘빈 손’으로 끝나면서 추가 협상은 설 연휴 이후에나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중재가 필요한 상황에서 최 권한대행은 지난 21일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면담 요청을 거절했다. 박 원내대표는 “내란 조기종식과 민생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만나자”고 제안했지만, 최 권한대행 측은 “여·야·정 협의회에서 논의하자”는 이유로 거절했다고 박성준 원내수석부대표가 전했다. 최 권한대행은 지난 13일 여야 대표를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야당만 따로 만나기는 부담을 느낀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박 원내대표는 지난 20일 국회에서 “국민의힘과 당정협의까지 한 최 권한대행이 야당을 단독으로 만나지 않을 이유가 뭐 있나”라고 했다.
여야정 협치가 교착 상태에 이르면서 국제사회가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은은 지난달 16일 ‘비상계엄 사태 이후 금융·경제 영향 평가’ 자료에서 “여·야·정 협의하에 주요 금융·경제정책을 차질없이 진행해 경제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신뢰를 줘야 한다”며 “정치 갈등 기간이 길어지면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확대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