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1면 사진들

눈 맞추고 입 맞춘 대심판정 사기극

강윤중 기자

※신문 1면이 그날 신문사의 얼굴이라면, 1면에 게재된 사진은 가장 먼저 바라보게 되는 눈동자가 아닐까요. 1면 사진은 경향신문 기자들과 국내외 통신사 기자들이 취재한 하루 치 사진 대략 3000~4000장 중에 선택된 ‘단 한 장’의 사진입니다. 지난 한 주(월~금)의 1면 사진을 모았습니다.

■1월 20일

12·3 비상계엄 사태를 일으킨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구속되자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구속영장을 발부한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침입해 창문과 외벽 등을 부시며 난동을 부리던 중 경찰 진압이 시작되자 달아나고 있다. 이준헌 기자

12·3 비상계엄 사태를 일으킨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구속되자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구속영장을 발부한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침입해 창문과 외벽 등을 부시며 난동을 부리던 중 경찰 진압이 시작되자 달아나고 있다. 이준헌 기자

‘헌정사상 최초’라는 단어가 흔해져버린 날들입니다. 지난 19일 비상계엄 사태를 일으킨 윤석열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됐습니다. 계엄 발령 47일 만입니다. 그는 헌정사상 최초로 구속된 현직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달았습니다. 서울서부지법은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습니다. 윤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영장을 발부한 법원에 집단으로 난입해 경찰과 취재진을 폭행하고 건물과 집기를 파괴했습니다. 이들은 삼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를 습격하는 ‘헌정사 초유’의 폭동사태를 일으켰습니다. 월요일자 1면 사진은 난동을 부리던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경찰 진압이 시작되자 달아나는 모습입니다.

■1월 2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9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취임식 전야 집회에서 그룹 빌리지피플의 노래 ‘YMCA’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9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취임식 전야 집회에서 그룹 빌리지피플의 노래 ‘YMCA’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AP연합뉴스

서울서부지법 난입·폭력 사태에 대해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기반한 헌법질서 근간을 위협하는 매우 중대한 범죄행위”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경찰은 서부지법 난동과 관련해 현행범으로 체포된 90명 가운데 66명에 대해 우선 구속영장을 신청했습니다. 그 와중에 구속돼 서울구치소에 수용된 윤 대통령은 탄핵심판 3차 변론기일에 직접 출석한다고 밝혔습니다. 탄핵소추된 대통령이 헌재에 직접 출석하는 첫 사례입니다. 국내의 탄핵 정국 격랑 중에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제47대 대통령에 취임했습니다. 다음날 이른 새벽 취임 시간에 앞서 마감된 1면 지면에는 트럼프가 취임식 전야 행사에서 노래‘YMCA’에 맞춰 춤을 추는 사진을 썼습니다. 윤석열과 트럼프. 겹치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1월 22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된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탄핵심판에 출석해 변호인과 대화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12·3비상계엄 사태 이후 49일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공동취재단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된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탄핵심판에 출석해 변호인과 대화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12·3비상계엄 사태 이후 49일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공동취재단

헌정사상 처음으로 탄핵소추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 출석했습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는 거부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전달할 수 있는 탄핵심판에는 모습을 드러낸 겁니다. 대통령은 그간 비상계엄의 사유로 주장해온 부정선거 의혹을 강조했습니다. 비상계엄 선포가 헌법과 법률을 준수한 것인지를 따지는 탄핵심판 쟁점과는 거리가 멀고, 주관적이거나 근거가 불분명한 내용을 되풀이했습니다. 윤 대통령 측이 정치적 주장으로 지지층을 결집해 헌재를 압박하려는 전략을 세운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습니다. 1면 사진은 49일 만에 공식석상에 등장한 대통령이 헌재 대심판정 피청구인석에 앉아서 변호인과 논의하는 모습입니다.

■1월 23일

한덕수 국무총리와 박성재 법무부 장관 등이 22일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선포를 통한 내란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증인선서를 하는 동안 이상민 전 행안부장관이 선서를 거부한 채 앉아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사진 크게보기

한덕수 국무총리와 박성재 법무부 장관 등이 22일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선포를 통한 내란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증인선서를 하는 동안 이상민 전 행안부장관이 선서를 거부한 채 앉아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의 첫 청문회가 국회에서 열렸습니다.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해 국무위원과 김성훈 대통령경호처 차장, 군 관계자들에 대한 질의가 이어졌습니다. 이날 청문회에 출석한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은 “(정치인 체포) 명단을 보니 그거는 안 되겠더라”며 양심고백을 했지요. 반면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증언하지 않겠다”며 답변을 거부했습니다. 1면 사진 후보를 고르면서 딱 한 장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고민할 것 없었습니다. 이날 청문회에 출석한 모든 이들이 일어나 증인선서를 하는 동안 이상민 전 장관만 선서를 거부한 채 앉아 있는 장면입니다. 이 전 장관의 ‘난동’입니다.

■1월 24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4차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제공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4차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제공

설 연휴를 이틀여 앞둔 23일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출발층이 북적이고 있다. 24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열흘간 130만여명이 해외로 떠날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원 기자

설 연휴를 이틀여 앞둔 23일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출발층이 북적이고 있다. 24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열흘간 130만여명이 해외로 떠날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원 기자

‘내란 우두머리’ 윤 대통령과 ‘내란 핵심’ 김용현 전 국방장관이 헌재에서 열린 대통령 탄핵심판에 나란히 출석했습니다. 이들은 비상계엄이 ‘경고성’에 불과했고 계엄 포고령이 실행 가능성이 없는 상징에 불과했다고 주장하면서도, 계엄 이후를 대비한 예비비 마련과 비상입법기구 설치 등을 준비한 사실은 인정하는 모순을 드러냈습니다. 이날 대통령은 김 전 장관을 직접 신문하기도 했는데요. 김 전 장관은 대통령의 질문에 “그렇게 말씀하시니 생각이 난다”고 했습니다. 둘은 심판정에서 눈빛도 맞추고 입도 맞췄습니다. 압권은 윤 대통령 측 대리인이 국회에서 ‘의원’을 끌어내라 지시한 것이 아니라 ‘요원’을 빼내라고 한 것이 맞느냐고 묻자, 김 전 장관이 “그렇다”고 답변한 것입니다. 아...진짜... 욕을 부르는 대목입니다. 재판관과 국민을 뭘로 보는 겁니까. 1면 상단에는 윤 대통령과 눈 맞추며 발언하는 김 전 장관의 사진을, 하단에는 설 연휴를 앞두고 출국하는 인파 사진을 썼습니다. 두 장의 사진이 이렇게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궤변과 사기극을 보고 있자니, 그냥 좀 멀리 떠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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