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축 앞둔 동물들, 불필요한 고통 너무 많아”

김기범 기자

전채은 동물을위한행동 대표

도축장 13곳 ‘동물복지평가’

계류장 등 열악한 환경 노출

대부분 큰 고통 유발 ‘낙제점’

돼지들은 몸을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밀도가 높은 통로에서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죽음을 기다려야 한다. 트럭에서 내리다 넘어진 소들은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한 채 그대로 방치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30일 전채은 동물을위한행동 대표가 건국대 수의과대학에 제출한 ‘소와 돼지 도축장의 동물복지 평가 연구’란 주제의 박사 학위 논문을 보면 도축장으로 옮겨진 가축들 대부분이 도축되기 전 학대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에서 도축장 가축의 동물복지에 대한 과학적 연구 결과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 대표는 2020~2022년 소 도축장 6곳, 돼지 도축장 7곳 등 전국 13개 도축장을 방문·조사한 뒤 동물복지 수준을 평가했다. 이 평가에는 수의사 2명도 참여했다. 논문은 도축장 도착·하차·계류·기절·방혈 등의 과정에서 동물들이 겪는 고통의 정도를 A~E등급으로 나눠 평가했다.

분석 결과 대기 및 도축 과정에서 벌어지는 학대로 소는 D, 돼지는 E에 해당하는 고통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A는 고통이 없는 경우를 의미하고, D는 심한 고통, E는 극심한 고통을 겪는 경우를 가리킨다.

동물들이 도축되기 전 대기하는 계류장에서 받는 고통은 D등급으로 분석됐다. 도축 공정 전반에서 받는 고통은 소가 C, 돼지가 D로 평가됐다.

대체로 돼지 도축장의 동물복지가 소 도축장보다 열악했다. 도축장으로 운반된 돼지, 소 등은 트럭에서 내릴 때, 컨베이어벨트에 탈 때, 도축되기 전 대기하는 동안 등에서 큰 고통을 겪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 대표는 동물복지를 위한 아주 작은 배려나 장치조차 마련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트럭에서 내릴 때 쓰는 하차대에 작은 턱만 있어도 소들이 미끄러지지 않는데, 이런 사소한 장치도 없는 곳이 많다는 것이다.

동물복지 선진국인 유럽연합(EU)에선 도축장 내 동물복지 평가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도입돼 있지만 국내 도축장 동물복지는 아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동물보호법에 도축 관련 규칙이 있긴 하지만 조사·단속 근거는 물론 도축장 복지의 평가 방법, 주체 등이 구체적으로 규정돼 있지 않다.

돼지나 소 등이 지나치게 밀도가 높고, 환기·급수 장치 등이 없는 계류장에서 긴 시간을 보내는 점도 지적됐다. 트럭에 실려온 돼지들은 당일 도축되지 못하고 다음날까지 기다리는 경우가 발생하면 밀집된 상태에서 밤새 서 있으면서 물도 못 마신 채 공포에 질린 상태로 다음날까지 고통을 겪어야 한다. 도축장 도착 후 돼지들이 도축되기까지 짧게는 4시간에서 길게는 15시간이 걸렸다. 소는 계류장을 지나 기절시키는 공간으로 가는 사이 공포반응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 대표는 “도축장 동물복지 평가와 관련한 제도적 개선과 함께 동물들이 도축 전 고통을 받지 않도록 시설을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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