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원래 곤란하다는 듯

이훤 사진작가
지나간 계절을 이어놓은 듯한 덩굴, Linking Winters 겨울 잇기(2024). ⓒ이훤

지나간 계절을 이어놓은 듯한 덩굴, Linking Winters 겨울 잇기(2024). ⓒ이훤

“밤사이 내릴 강설로 인해 길이 미끄러울 예정이니 대중교통 이용, 눈길 미끄럼 등 주의 바랍니다.” 늦은 밤 안내문자를 받았다. 현관에 눈 삽과 장갑을 미리 챙겨놓고 잠에 들었다. 일어나면 복숭아뼈만큼의 눈이 소복이 쌓여 있을 것이다.

사는 일이 버거웠던 시절에는 비슷한 문자를 받고 눈물이 핑 돈 적이 있다. 밤새 눈이 온다는, 하늘이 무겁고 땅이 아슬아슬하니 조심하라는 건조한 문구가 내 삶을 관통하는 무심한 은유처럼 느껴졌다. 누구의 삶에나 악천후로 가득 찬 절기가 찾아온다. 신이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면, 더 절절한 예보를 미리 발신할 만큼 막막한 시기 말이다.

사는 일은 때때로 지나치게 미끄럽다. 하나를 잡으면 다른 손에 쥔 것을 놓쳤다. 나의 사정과 무관하게 폭설은 찾아왔다. 홀로 맞기도 하고 둘이 맞기도 했다. 두 사람이 함께 겪는 폭설은, 나누어갖기 때문에 줄어들기도 하지만 둘이 겪기 때문에 곱절로 무거워지기도 했다.

눈이 자주 내리는 나라에 산 적 있다. 거기선 아무리 눈이 많이 와도 아무도 비슷한 경고를 하지 않았다. 앞을 보기 어려울 만큼 광대한 대설 정도는 내려야 안내문자가 도착했다. 두꺼운 눈발에 머리가 자주 덮였고, 30㎝ 넘게 쌓인 눈 사이를 익숙하게 장화를 신은 채 건넜다. 폭설은 두통이 찾아올 만큼 맹렬한 눈보라를 동반했다. 삶은 원래 곤란하다는 듯. 이 정도는 으레 견뎌야 한다는 듯 사람들은 별 불평 없이 반 년 가까운 겨울을 버텼다. 나도 그들처럼 한 시절을 보냈다.

지금 사는 동네에서는 눈이 내려도 무릎까지 오는 장화를 신지 않아도 된다. 달라진 날씨와 함께 나도 새로운 시절에 접어들었다. 덩굴식물이 한겨울에도 몸을 뻗는 걸 본다. 뒷산의 길목에는 고양이들이 뛰어다니고 박새 떼가 그 위를 지난다. 그들 모두 자신의 겨울을 견디었고 견디는 중이다.

우리는 서로의 폭설을 다 알아볼 수 없다. 개입할 수 없다. 다만 우리가, 당신과 나의 폭설이 순서 없이 여러 시제로 뒤엉킨 이곳에서 매일 새 하루를 시작할 뿐이다. 그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나는 카메라를 들고 오래 걷는다. 아무것도 찍지 않았지만 어떤 날은 여러 풍경을 어깨에 두른 사람처럼 조금 두둑해진 채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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