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2월 31일 70대 남성이 몰던 승용차가 돌진해 여러명이 다친 서울 양천구 목동 깨비시장 사고 현장을 119 구조대원이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도로교통공단이 지난달 고령 운전자를 상대로 제출받은 치매선별검사의 합격률이 99.9%로 나타났다. 치매 상태에서 운전대를 잡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고령 운전자를 대상으로 치매선별검사를 하고 있지만 변별력이 낮아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31일 경향신문이 도로교통공단으로부터 입수한 ‘75세 이상 고령자 적성검사 월보’를 보면 지난달 치매선별검사를 받은 75세 이상 운전자 2만6370명 중 2만6357명이 합격한 것으로 나타났다. 합격률은 약 99.9%로, 전국 27개 운전면허시험장 중 불합격자가 나온 곳은 서울 도봉(3명)·경기 용인(1명)·강원 태백(1명)·경남 마산(8명) 등 4곳뿐이었다.
2019년 개정된 도로교통법에 따라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는 3년마다 운전면허를 갱신해야 한다. 운전면허를 갱신할 때 치매안심센터에서 받은 인지선별검사(CIST) 결과지를 운전면허시험장에 제출하거나, 운전면허시험장에서 직접 선별진단을 받아야 한다. 고령 운전자들은 대부분 전국 보건소에 설치돼있어 접근성이 좋은 치매안심센터 방문 검사를 택한다. 지난달 운전면허시험장을 찾아가 직접 선별진단을 받은 사람은 전국적으로 117명에 그쳤다. 직접 선별진단 불합격률은 약 8%였다.
CIST 합격률이 99.9%에 달하다 보니 이 검사가 치매 운전자를 가려낼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장치인지에 의문이 제기된다. 치매안심센터는 CIST 검사지를 신청자의 신분과 소속기관, 사용목적 등을 가려 제공하면서 ‘동의 없이 대중에게 배포하거나, 홈페이지 등에 게재하여 불특정 다수에게 열람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지만 인터넷 검색으로 검사지를 쉽게 구할 수 있다. 미리 합격 판정을 받기 위해 사전에 검사 준비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오늘 날짜가 며칠인지 묻거나 간단한 단어 기억 및 산수를 요구하는 등의 13개 문항이 치매로 인한 운전 능력 저하 여부를 평가하기엔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 건수는 해마다 늘고 있다.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를 보면 65세 이상 운전자 교통사고 건수는 2023년 기준 총 3만9614건으로 최근 3년간 꾸준히 증가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추산한 올해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는 498만명에 달하는데, 중앙치매센터는 전국 65세 노인 인구의 약 10%가 치매를 앓는다고 보고 있다.
고령 운전자 운전 제한 논란은 지난해 7월 발생한 서울 시청역 역주행 사고에서 크게 불거졌다. 야간에 도로를 역주행해 사상자 15명을 낸 가해 차량 운전자가 68세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고령 운전자에겐 ‘조건부 운전면허’를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해 12월 31일 서울 양천구 목동깨비시장에서 13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차량돌진 사고를 일으킨 70대 남성 운전자 A씨는 치매 진단 받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경 치매 진단을 받은 A씨는 지난해 2월부터 약 복용을 중단한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적성검사 연령 기준(75세)에 미달했던 A씨는 치매선별 검사를 받지 않았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획일적으로 운전을 제한하는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는 반론도 있다. 고령이라 하더라도 인지능력이나 반사신경 등 운전에 필요한 능력에는 개인차가 있는 만큼 일률적인 면허 제한은 차별이라는 것이다. 다만 치매 검사의 실효성을 높이는 것이 불필요한 노인 차별 논란을 잠재우고 이동권 침해 논란도 피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치매 환자 선별 가능성을 높임으로써 운전 능력이 건재한 고령 운전자들이 사회적 편견 등에서 자유롭게 운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황준승 교통과사람들 연구소 소장은 “단순 검사지 대신 주행·기능시험을 보거나 야간시력·동체시력 검사를 추가하는 방안이 있다”면서 “80세 이상 초고령자는 사고율이 더 높은 만큼 연령 구간을 나누어 검사주기를 단축하거나 검사 항목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 최근 들어 운전 능력에 대해 환자 본인이 자신감이 떨어진다.
2. 다른 운전자들이 환자 본인에게 자주 경적을 울린다.
3. 익숙한 장소에서도 길을 잃거나 가야 할 곳을 지나치는 일이 반복된다.
4. 브레이크와 액셀러레이터를 자주 혼동한다.
5. 과속, 저속, 부적절한 회전이나 차선 변경, 이유 없는 급제동 등으로 교통 법규 위반 딱지를 떼이거나 경고를 받는 일이 근래에 매우 잦아졌다.
6. 자동차나 차고에 최근 들어 흠집이 많이 늘었다.
7. 좌회전/우회전 신호를 잘못 보내거나 교통 신호에 부적절하게 반응하는 일이 잦아졌다.
8. 최근 들어 환자가 운전할 때 동승자가 매우 불안을 느끼고 불편해하는 일이 많다.
9. 동승자가 계속해서 주의를 주거나 익숙한 길에서도 안내를 해줘야 하는 일이 늘었다.
10. 갑작스런 상황이 생겼을 때 대처가 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