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1일 또다시 ‘윤석열 내란특검법’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여야 간 줄타기 행보를 마무리하고 여권을 택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12·3 비상계엄을 막지 못한 국무위원이라는 한계를 지닌 최 권한대행이 내란특검법을 막는 데는 ‘수문장’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1일 오후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최 권한대행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현 시점에서는 새로운 수사기관을 만들기보다는 현재 진행 중인 재판 절차를 통해 실체적 진실을 공정하게 규명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고 거부권 행사 이유를 밝혔다. 이미 윤석열 대통령이 재판에 넘겨졌으니 새로운 수사 기관이 움직일 필요는 없다는 논리다. 윤 대통령 기소로 특검이 무용해졌하다는 국민의힘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이런 논리를 두고 ‘자기 모순’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윤 대통령 기소까지 특검이 출범하지 못하게 된 상황에 최 권한대행이 일조했다는 것이다. 최 권한대행은 앞서 현실성이 낮은 여야 합의를 요구하며 1차 내란특검법을 거부했다. 이어 지난 17일 여당 주장을 대폭 반영한 2차 내란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한 뒤에도 공포를 미뤘다. 결국 윤 대통령 기소 시점까지 시간이 흐르도록 한 뒤, 기소를 이유로 다시 특검법을 거부한 셈이다.
최 권한대행은 또 “지난 특검법안에 비해 일부 보완됐지만 여전히 위헌적 요소가 있다”며 “‘국가기밀 유출 가능성’도 제기돼 헌법 질서와 국익 측면에서 부정적인 영향이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표면적으로는 특검 무용론과 위헌 우려 등을 들었지만 정치적 고려를 했다는 해석이 많다. 강경 보수층 결집으로 여당 지지율이 올라간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최 권한대행 탄핵까지 추진하기는 부담스러울 거라는 판단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그간 여권에서는 최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를 일종의 ‘꽃놀이패’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었다. 최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해 내란특검법을 막으면 ‘윤 대통령 방탄’에 도움이 되고, 이후 민주당이 거부권 행사를 명분으로 최 권한대행 탄핵을 추진하면 그 역시 보수 결집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통화에서 “윤 대통령이 탄핵소추 되면서 ‘윤석열 심판’ 무대는 종료되고 그 다음은 ‘이재명 심판’ 무대가 시작된 것”이라며 “그 시험대에서 민주당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국무총리)을 탄핵하면서 야당 지지율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여당은 민주당이 최 권한대행 탄핵까지 나설 경우 야당 지지율이 더 떨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통화에서 “민주당은 지금 수권 정당으로서의 자질을 평가받고 있다”며 “이 대표가 계속 급한 모습을 보이면서 최 권한대행까지 탄핵시키면 대선은 해볼만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에도 이런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최 권한대행은 조만간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 여부를 두고 다시 시험대에 설 가능성이 높다. 최 권한대행은 앞서 국회가 추천한 헌법재판관 후보자 중 마 후보자만 임명하지 않았다. 헌법재판소는 마 후보자 불임명의 위헌 여부를 따져보고 있고, 다음달 3일 결론을 낼 예정이다. 헌재가 마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은 최 권한대행의 행위가 위헌이라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법조계의 관측이다. 이후 최 권한대행이 마 후보자를 최종적으로 임명해 민주당의 손을 들어주는 식으로 여야 간 줄타기를 이어갈 가능성도 있다.
이번 내란특검법 거부권 행사를 두고 최 권한대행은 모순된 행보를 보였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최 권한대행은 12·3 비상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 참석자이지만 계엄을 저지하기 위한 적극적 행동은 하지 않았다. 권한대행을 맡은 뒤에는 대통령의 권한을 소극적으로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내란특검법에 대해선 두 차례 거부권을 행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