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8월26일 서울 마포구 상암MBC사옥. 권도현 기자
“사는 게 너무너무 피곤합니다.”
MBC 기상캐스터 오요안나씨가 지난해 9월 세상을 등지면서 남긴 말이다. 오씨는 휴대전화에 원고지 17장 분량의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유족이 ‘직장 내 괴롭힘’ 정황이 담긴 유서를 발견하고, 동료 직원을 상대로 소송을 낸 사실이 보도되면서 뒤늦게 알려졌다.
오씨는 2021년 5월 MBC와 프리랜서 계약을 맺었다. 이듬해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 기상캐스터 편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즈음 오씨와 그의 동기를 뺀 ‘MBC 기상캐스터 4인 단톡방’이 생겼고, 괴롭힘이 이어졌다는 게 유족의 주장이다.
2019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됐지만 비극은 끊이지 않는다. 오씨와 같은 프리랜서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라 피해를 호소하기도 어렵다.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사 비정규직 근로여건 개선방안 연구’를 보면, 2021년 KBS·MBC·SBS 등 지상파 방송사 인력 중 9199명이 비정규직이었다. 이들 중 32.1%가 프리랜서, 19.2%가 파견직, 15.3%가 용역업체 등 간접고용이었다.
문제는 방송사 비정규직 노동자들 중 대다수인 프리랜서들이 ‘무늬만 프리랜서’라는 점이다. 해당 방송사에 전속돼 있지만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방송사가 ‘비정규직 백화점’이라는 오명을 쓰는 이유다. 수많은 오요안나씨들에 의해 방송은 어떻게든 만들어지니 방송사로선 아쉬울 게 없다. 이런 현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사내에서 발생한 비극에 대한 MBC 태도는 부적절했다. 문제가 불거지자 MBC는 “MBC 흔들기 차원에서 접근하는 세력들의 준동”이라고 했다가 비판이 커지자 진상조사 착수 입장만 밝힌 상태다.
2020년 2월4일에도 CJB청주방송에서 프리랜서로 14년간 일했던 이재학 PD가 목숨을 끊었다. 처우 개선을 요구하다 해고당한 그는 “억울해 미치겠다”는 유서를 남겼다. 방송사가 더 이상 ‘악덕 사업주’란 비판을 듣지 않으려면 비정규직 노동자 처우에 대한 답을 해야 한다. 재미저널리스트 안희경에 따르면 “나의 안녕은 타인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사다리를 건네며 보장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