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람’을 찾았다. 언젠가 아내에게 선물받은 보람이다. 황금빛이 나는 말 모양 보람은 예쁘기는 하지만 사용하기에는 불편해 책장 한쪽 귀퉁이에 두고 잊고 지냈다.
황금빛 보람? 보람에도 색깔이 있을까. ‘보람’은 ‘어떤 좋은 결과나 만족감’을 뜻하는 말이다. 대부분 우리가 알고 있는 보람의 의미다. 여기에 색깔이 있을 리 없고, 선물로 주고받는 물건은 더더욱 아니다.
보람이 처음부터 이런 뜻을 가진 것은 아니다. 보람은 원래 물건 이름이었다. 보람을 찾아 세월을 거슬러 가다보면 15세기에 다다른다. 15세기 문헌 <월인석보>에 보람이란 단어가 처음 나온다. 물건에 붙여두는 표적이나 표시란 뜻으로 쓰였다. 책을 읽던 곳을 표시하기 위해 끼워두는 물건이 보람이다. 내가 찾은 보람은 바로 책갈피다. 나중에 헤매지 않고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흔적을 남긴다는 점에서 책갈피와 보람은 닮아 있다.
‘다른 물건과 구별하거나 잊어버리지 않도록 표시를 해두는 것’이 보람의 본뜻이다. 여행을 가면서 비행기에 짐을 실어 보낼 때 다른 사람 가방과 구별하기 위해 가방에 매다는 이름표나 꼬리표도 보람이다. 책을 읽다 접은 후 다시 읽을 때 쉽게 찾도록 표시하기 위해 끼워두는 줄은 보람줄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보람이 ‘물건에 붙여두는 표시’란 뜻보다는 마음에 느껴지는 만족감이란 의미로 더 많이 쓰이기 시작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느끼는 뿌듯함. 더 이상 보람줄도, 보람도 필요 없게 되는 상황. 여기에서 물건 이름인 보람이 마음에도 작은 흔적을 남기는 표시, 만족감이란 뜻이 나왔다.
나의 본업은 누군가가 쓴 글을 수정하는 일이다. 백지에 무언가를 채워넣는 글쓰기가 아니다. 작은 부담을 안고 본업이 아닌 글쓰기로 새해 문을 연다. 어쩌면 이 글쓰기가 내 마음에 ‘보람’을 남기는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잠깐 떠올려보자. 올해 어떤 ‘보람’을 마음에 남길지. 모두의 마음에 작은 흔적 하나쯤 남기는 해가 되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