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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껏 이동하며 살아갈 권리

설 연휴를 앞둔 지난달 24일 오전, 서울역에서 명절 인사 중인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앞에서 한 여성이 손팻말을 들고 전동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장애인 권리 법안들을 올해 꼭 통과시켜달라는 요청이었다. 기차역이라는 공간에서 고향을 향해 재촉하는 발걸음들은 장애인을 비롯한 교통약자의 취약한 이동권과 사뭇 대조되는 듯 보였다.

사실 권 원내대표와 장애인단체의 서울역 만남은 처음이 아니었다. 2022년 추석 전, 장애인단체는 명절 인사 나온 권 원내대표에게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해달라고 요청했고, 그는 당시 잘 살펴보고 합리적인 대책을 만들겠다고 대답했다. 그 뒤로 3개월이 지난 2022년 말, 그는 장애인단체의 출근길 지하철 탑승 행동에 대해 ‘떼법의 일상화, 불법의 습관화’라 평했다. 명절 때마다 서울역에서 반복되는 정치인과 장애인단체의 만남은 고작 그 정도의 의미였을까.

우리나라에는 2005년 제정되어 올해 스무 살 된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이 있다. 교통약자는 장애인, 고령자, 임산부, 영유아를 동반한 사람, 어린이 등 일상생활에서 이동에 불편을 느끼는 사람을 말한다. 이들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에 이동 편의시설을 확충하고 보행 환경을 개선해 사람 중심의 교통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만든 법이다.

그중 저상버스는 교통약자를 위한 지상 공공 교통수단의 핵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닥이 낮고 출입구에 계단이 없기에 휠체어도, 유아차도, 무거운 바퀴 가방도 쉽게 버스에 오르내릴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2023년 기준 전국 저상버스 도입률은 겨우 26.3%이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렇다. 우리나라에는 4만4000여대의 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시내버스와 농어촌버스, 시외버스와 고속버스를 모두 합친 숫자이다. 시내버스와 농어촌버스 중 저상버스는 40%를 조금 넘는 수준이고, 시외버스와 고속버스는 저상버스가 없다. 2019년 반짝 시범사업으로만 도입되었다가 2년도 못 채우고 없어졌다. 장애인 콜택시가 있긴 하지만 지역별로 분절적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이용이 까다롭고, 2시간은 기본으로 대기해야 하는 등 불편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서 2021년 12월 말 교통약자법이 개정되어 2023년 1월부터 노선버스 운송사업자가 시내버스, 마을버스 등을 대폐차하는 경우 저상버스로 바꿔야 하는 의무가 생겼다. 그러나 저상버스 의무 도입 예외 노선이란 제도로 이 의무를 쉽게 회피할 수 있다. 도로 상황에 따라 저상버스 운행이 어려운 구간을 임의로 정해서 저상버스를 배차하지 않는 노선인데, 도로 개선에 예산을 쓰지 않으니 이 예외 노선이 줄어들지 않는다.

명절 연휴 중 현직 대통령이 내란죄로 구속 기소되는 마당에 그깟 저상버스가 뭐 그리 중요하냐 되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이 아무리 복잡하게 돌아가도 사람들의 작은 일상이 쌓여 이 사회가 움직이고 발전한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람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권리는 그 일상이 돌아가는 데 근본적인 역할을 한다.

이 점을 고려해 2022년 8월 제네바에서 장애인권리협약 이행 심의를 마친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대한민국에 국가 차원의 포괄적인 접근권 전략을 수립하라고 권고했다. 이동권은 국가가 시혜적으로 베푸는 단순한 편의 제공이 아니라 사람이 누릴 마땅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15분 간격 버스인데 저상버스가 아니라서 세 번 연달아 보내는 허탈함, 드디어 도착한 저상버스에 올라타려는데 고장 났으니 다음 차 타라고 휘휘 내젓는 손을 몇 번 경험하면 교통약자는 자유로운 이동을 포기하게 된다. 비장애 중심의 교통체계가 부여한 권력을 누리는 사람들도 언젠가는 교통약자가 되는데 말이다. 휠체어도 유아차도 마을버스와 고속버스를 타고 마음껏 돌아다니는 세상이야말로 진짜 통합의 열쇠가 아닐까.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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