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 속도가 중요하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한국은행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 11월의 1.9%에서 1.6~1.7%로 하향 조정했다. 내란 사태로 인한 정치적 불확실성을 추가 반영했기 때문이다. 소비와 투자 심리지수는 외환위기나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와 유사한 수준으로 악화되었으며, 지난해 4분기 경제성장률은 예상보다 낮은 0.1%에 그쳤다. 기업들의 신규 투자는 주춤하고, 제조업과 서비스업 등 전반적인 산업이 위축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글로벌 경기 둔화와 지정학적 리스크가 겹쳐 수출 감소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이런 경제 상황에서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것은 자영업자다. 신용카드 매출이 감소하고 대출 연체율은 급증했다. 고소득 자영업자의 연체율도 9년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자영업자의 어려움은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도 영향을 미쳐 공실률이 증가하고 상가 임대료가 하락하는 추세다. 한국부동산원의 조사에 따르면, 전국 상가 10곳 중 1곳이 공실이며, 집합상가 임대가격지수는 전년 대비 0.4% 하락했다. 이는 소비 침체와 경기 위축이 현실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부 자영업자들은 폐업을 고려할 정도로 경영난이 심화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일자리 상황도 좋지 않다.

그러나 정부는 기존의 ‘선 예산 집행 후 추경’ 입장을 고수하며 추가 재정 투입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추경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한국은행 총재까지 15조~20조원 규모의 대규모 추경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통화정책을 담당하는 한국은행이 이례적으로 재정정책을 촉구하는 것은 현재의 경제 위기와 정책 대응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신호로 볼 수 있다. 실제로 미국 연준이 기준금리를 동결한 상황에서 치솟는 환율 때문에 한국은행이 금리 인하로 대응하기 어려운 현실도 이러한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더욱이, 금리를 낮춘다고 해도 소비심리가 얼어붙은 상태에서는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재정정책을 통한 적극적 대응이 절실하다.

특히 내란 사태로 인한 정치적 불확실성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정부의 대응이 늦어질 경우 민생의 어려움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것이다. 국회는 계엄 선포로 인해 4조1000억원이 감액된 상태로 제대로 된 증액 논의 없이 예산을 통과시켰다. 여기에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감세 정책들로 세수는 예산보다 늘어날 예정이다. 적당한 규모의 추경은 정부의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도 크게 이탈하지 않는다.

이번 추경의 핵심은 속도다. 경제 상황은 빠른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자영업자 매출 증대를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이 포함되어야 하며, 단순한 기업 지원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민생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반도체나 인공지능 산업과 같은 미래 성장 동력 투자도 중요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소비 촉진과 경기 부양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특히 자영업자 대상의 저리 대출 지원이나 신용보증 확대와 같은 실질적인 방안이 병행되어야 한다. 또한, 소비심리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가 직접적인 지원책을 내놓아야 한다. 예를 들어, 복지 시스템에 들어와 있거나 일정 소득 이하 가구를 대상으로 한 소비 쿠폰을 지급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온누리 상품권과 지역화폐의 성격을 섞은 하이브리드 형태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전국에서 사용 가능하게 하되, 사용처를 전통시장보다는 좀 더 넓게 확장해주는 것이다.

민주당이 기존의 ‘1인당 25만원 지급’ 주장을 철회한 것은 여야 합의의 가능성을 높이는 요소다. 국민의힘도 조기 대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경제 위기 대응을 위한 협조에 나설 필요가 있다. 규모가 너무 크면 합의가 어려울 수 있으므로, 중급 규모의 추경을 신속하게 통과시키고, 향후 대규모 추경은 조기 대선 후의 차기 정부가 맡는 것이 현실적이다. 예산 심의 과정에서 불필요한 정치적 공방을 줄이고 실질적인 합의가 이뤄져야 하며, 경기 회복의 시급성을 감안하면 지연은 곧 경제 위기 심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과거 사례를 보면, 2월 초에 합의하더라도 예산 편성과 심의 과정으로 인해 실제 시행까지 한 달 이상 소요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다. 민생이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지 않도록, 여야가 협력해 자영업자 매출 증대와 소비 활성화에 초점을 맞춘 신속한 추경을 추진해야 한다. 실질적인 경기 부양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경기 침체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경제 회복은 단순한 정책적 결정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지만, 최소한의 대응조차 지연된다면 피해는 더욱 커질 것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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