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흔드는 국민의힘, 조기 대선도 거부할 텐가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이 3일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권성동 원내대표를 바라보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이 3일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권성동 원내대표를 바라보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국민의힘의 불운은 끝나지 않는다. 대통령 윤석열이 구속 기소돼서만이 아니다. 당을 이끄는 지도부의 면면도 만만치 않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검사 출신이다. 권성동 원내대표도 검사 출신이다. 검사 출신들의 뇌구조는 정치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 상명하복, 무죄 아니면 유죄, 나 말고는 다 거짓말쟁이…. 평상시라면 그럭저럭 버틸 수 있다. 지금 같은 위기엔 다르다.

정치적 상상력도, 유연한 협상력도 없는 이들이 헌법재판소 공격에만 집중하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검사 출신 보수정당 정치인들이 평생 해온 일이 색깔론과 갈라치기이니.

권·권 투톱은 법원 내 연구단체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이 헌법재판관 가운데 많다며 “헌재는 우리법재판소”라고 몰아붙인다. 과거 권 원내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정부 때 재판을 받은 사람입니다. 재판 끝나고 나중에 보니까 1심 재판장이 우리법연구회 소속이더라고요. 그런데 정확하게 판단을 합디다.” 강원랜드 채용청탁 혐의로 기소됐다 1심에서 무죄가 난 사안을 가리킨 것이다.

권·권 투톱은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10여년 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내용을 근거로 ‘문 대행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가깝다’고 주장한다. 권 원내대표는 이 대표와 중앙대 법대 선후배 사이다. 고시반에서 함께 사법시험을 준비했다고 한다. 친분으로 따지면 문 대행보다 깊을 것 같다. 혹시 본인의 친분이 드러나 극우 지지층에게서 ‘배신자’ 소리 들을까봐 선수치는 건가.

권·권 투톱은 정계선 헌법재판관 남편이 탄핵소추대리인단 김이수 변호사와 같은 공익재단에서 활동한다며 “헌법재판이 패밀리 비즈니스냐”고 비아냥댄다. 정 재판관의 남편은 충암고·서울대 법대 출신이다. 윤석열과의 인연이 더 깊지 않나?

국민의힘 지도부가 무논리·비논리로 헌재를 흔드는 이유를 짐작하긴 어렵지 않다. 헌재가 윤석열 탄핵을 인용(파면)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헌재의 신뢰도를 추락시켜, 파면 결정이 나더라도 지지층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기각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면 침묵했을 것이다.

재판관 4 대 4 의견으로 기각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심판 결과에도 고무됐을 법하다. 재판관들을 갈라치기하려는 욕망이 작동했을 터다. 이는 인용 쪽에 선 재판관 4명은 물론 기각 쪽 재판관 4명까지 모독하는 행태다.

2007년 6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야당과 야당 대선주자들을 비판하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선거중립 의무 준수 요청’을 받았다. 그러자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했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당시 재판관 9명은 모두 노 대통령이 임명한 이들이었다. 인용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 이유다. 이듬해 1월 헌재는 기각 결정을 내렸다. 5명이 기각, 2명이 인용, 2명이 각하 의견을 냈다.

2017년 대통령 박근혜 탄핵심판 당시 재판관 8명의 성향이 보수 6, 진보 2로 분류됐지만 전원일치로 인용(파면) 결정이 나왔다.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 보류 권한쟁의심판 선고를 하루 앞둔 2일 헌법재판소 앞 전광판에 선고 예정 사건 안내가 나오고 있다. 3일로 예정됐던 권한쟁의심판 선고는 연기됐다. 정효진 기자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 보류 권한쟁의심판 선고를 하루 앞둔 2일 헌법재판소 앞 전광판에 선고 예정 사건 안내가 나오고 있다. 3일로 예정됐던 권한쟁의심판 선고는 연기됐다. 정효진 기자

재판의 독립과 법관의 독립은 법치 구현의 필수 요건이다. 헌법재판관이나 법관이 헌법·법률과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한다는 신뢰가 없다면, 개인적 배경이나 인연에 따라 재판을 한다고 의심받는다면, 법치는 물건너간다. 헌법학자들이 “정당하게 임명된 재판관들을 근거 없이 공격하는 것은 헌법재판의 권위와 독립성을 흔드는 것이자, 우리 사회가 쌓아온 민주헌정에 대한 신뢰와 합의를 훼손하는 것”(헌정회복을 위한 헌법학자회의)이라고 일갈한 까닭이다.

국민의힘은 지금 한국의 사법을 흔들고, 법치를 파괴하고, 분열을 선동하고 있다. 서울서부지법 난입·폭력 사태를 겪고도 사법불신을 부추기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국민의힘이 망가뜨리는 게 뭔지, 그 결과가 어떻게 이어질지 시민은 똑똑히 지켜보고 있다.

극우 지지층의 환호에 중독된 국민의힘을 멈춰 세우기는 어려워 보인다. 권·권 투톱은 마침내 서울구치소로 가서 내란 수괴를 ‘알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들은 탄핵심판 피청구인이자 내란죄 피고인과 “헌재의 편향성에 대한 우려”를 함께했다고 한다.

역시 검사 출신인 주진우 당 법률자문위원장은 “우리법연구회를 주름잡았던 문형배·이미선·정계선·마은혁(후보자)의 끼리끼리 법해석에 도저히 승복 못할 것 같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헌재 결정에 불복할 가능성을 시사하며 ‘밑밥’을 깐 셈이다.

문 대행과 이·정 재판관이 탄핵심판에서 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헌재는 최소 8인 체제, 마 후보자가 임명될 경우 9인 체제로 윤석열 파면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국민의힘에 묻는다. 헌재가 현 체제로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주문을 낭독하면 어떻게 할 텐가. ‘우리법재판소’의 ‘편향된’ 결정인 만큼, 여전히 윤석열을 ‘우리 대통령’으로 떠받들 건가.

헌법재판은 단심제다. 공당으로서 불복할 길은 ‘대선 거부’ 즉 조기 대선에 후보를 내지 않는 일 뿐이다.

국민의힘이 계속 헌재를 흔들려거든, 이 물음에 대한 답부터 내놔야 한다. “헌재가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하면, 국민의힘은 차기 대선을 포기할 겁니까?”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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