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불법승계’ 2심도 무죄···행정법원이 인정한 분식회계도 “근거 부족”

유선희 기자

검찰, 2000건 추가 증거 제출에도 무죄 선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합병·회계부정 의혹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권도현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합병·회계부정 의혹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권도현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3일 ‘삼성그룹 경영권 불법승계’ 사건 항소심에서도 1심에 이어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회장이 기소된 지 4년5개월, 1심 무죄 선고가 나온 지 1년여 만이다.

서울고법 형사13부(재판장 백강진)는 이날 자본시장법과 외부감사법 위반, 업무상 배임 등 3개 죄목에 19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회장과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실장,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 등 전·현직 임직원과 삼정회계법인 대표 등 14명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굳은 표정으로 선고 내용을 듣던 이 회장은 재판장이 “무죄 판단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판결하자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 회장은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정에서 최소비용으로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승계하고 지배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미래전략실이 추진한 각종 부정거래와 시세 조종을 한 혐의로 2020년 9월 기소됐다.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 회계 부정에 관여한 혐의도 받았다.

검찰은 1심에서 인정되지 않은 증거가 위법하지 않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약 2000건의 증거목록을 제출했다. 또 지난해 8월 삼성바이오 분식회계(회계장부상 정보를 고의로 조작하는 행위)를 사실상 인정한 서울행정법원 판결을 공소장에 반영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무죄’

항소심 주요 쟁점은 2015년 삼성바이오가 자회사 삼성에피스(에피스)를 ‘관계기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회계처리 기준을 위반한 분식회계를 했는지였다. 에피스는 자회사일 때 회계장부상 가치가 3000억원이었는데 관계기업이 되면서 시장가격인 4조8000원으로 올랐다. 검찰은 이 회장이 경영권 승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에피스 지분가치를 키워 삼성바이오 기업가치를 부풀렸다고 봤다. 삼성바이오의 최대주주는 제일모직이고, 제일모직은 이 회장이 대주주로 있으므로 제일모직 가치가 높을수록 이 회장은 더 많은 지분을 갖게 돼 경영권 승계가 유리한 구조였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의도를 갖고 분식회계를 했다고 볼 근거가 부족하다”고 봤다. 이는 삼성바이오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위해 자본잠식 문제 등을 해결하려는 목적으로 회계처리를 했다고 본 서울행정법원 판단과 배치된다. 2심 재판부는 “삼성바이오 재경팀이 회계기준 위반에 대한 확정적인 인식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전체적으로 그 판단에 이르는 근거와 과정에 최소한의 합리성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삼성바이오가 합작계약을 맺은 바이오젠이 에피스 지분을 49.9%까지 매입할 수 있는 권리(콜옵션)를 보유하고 있는 사실을 뒤늦게 공시한 것은 미흡했다고 인정하면서도 “고의가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회계처리 진행에 문제가 있었어도 형사처벌은 엄격히 봐야한다는 판단이다.

‘삼성물산·제일모직 불법 합병’도 무죄

이재용, ‘불법승계’ 2심도 무죄···행정법원이 인정한 분식회계도 “근거 부족”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목적이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는 1심 판단도 유지했다. 두 회사 합병이 이 회장의 승계나 지배력 강화만을 목적으로 한다고 볼 수 없고, 합병 비율이 불공정해 삼성물산과 그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인정할 만한 근거도 없다고 봤다.

2심 재판부 판단은 여전히 2019년 8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과 배치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삼성의 승계작업에 대해 “삼성그룹은 이 회장의 지배권을 강화한다는 목적으로 그룹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승계작업을 진행했다”고 판시했다. 이 회장이 최서원씨(개명 전 최순실)의 딸 정유라씨의 승마를 지원한 것을 두고도 “직무와 관련한 이익(승계작업)을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뇌물을 제공한 것”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이 회장은 징역2년6개월이 확정됐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1심 판단과 같이 “대법원 판시는 이 합병에서 이 회장의 지배권 강화가 유일한 목적이 아니고 합리적 사업상 목적도 존재했고, 합병을 통해 그룹 지배권 강화 및 경영권 안정화가 되면 삼성물산과 그 주주들에게도 이익이 된다고 판단했다”며 대법원 판단과 배치되는 게 아니라고 했다.

재판부 “적법 증거여도 무죄 판단 같아”

2심 재판부는 1심 재판부가 위법수집증거로 본 검찰의 ‘2019년 삼성바이오와 에피스 서버 압수수색 자료’ 등을 그대로 위법한 증거라고 판단했다. 검찰이 새로 제출한 2000건의 증거목록도 인정하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검찰이 수집한 증거가 적법했더라도 무죄 판단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날 선고 이후 이 회장 측 김유진 변호사(법무법인 김앤장)는 “이제는 피고가 본연의 업무에 전념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참여연대는 “재벌 총수일가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시장질서를 훼손하고 회사와 주주, 더 나아가 전 국민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과 정부에 수천억원의 피해를 준 악질 범죄행위에 면죄부를 준 판결”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의한 그룹 지배권 승계 목적과 경위, 회계부정과 부정거래행위에 대한 증거판단, 법리판단에 관해 항소심 판결문을 면밀히 분석해 상고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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