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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하고 의심하는 유권자

입력 2025.02.03 21:04

수정 2025.02.03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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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사태의 시발점이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한마디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심경이 복잡하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다. 하지만 2013년 10월21일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나온 그 한마디가 아니었으면, 검사 윤석열이 전 국민에게 이름을 알리고, 서울중앙지검장을 거쳐 검찰총장이 되고, 이를 발판으로 대통령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면 혹시 2024년 12월3일 비상계엄 선포와 그 이후의 악몽 같은 사태도 없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 발언은 윤석열이 어떤 검사였는지, 검찰총장 혹은 대통령이라는 더 높은 공직자가 되기에 적합한 사람인지에 관해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실제 살아온 행적을 보면 공직자가 충성해야 할 민주주의와 법치에 반하는 부분이 많다. 그 발언 하나에 다들 열광했던 일이 부끄러울 뿐이다.

상황에 딱 맞아 귀에 쏙 들어오는 말 한마디, 기억에 남는 ‘짤’ 혹은 ‘밈’으로 명성을 얻는 사람들이 있다. 인터넷, 소셜미디어가 이런 반응을 강화하는 것은 사실이나, 예전이라고 해서 그런 사례가 없진 않았던 것 같다. 유명세나 인지도란 원래 그런 것이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의 세계라면 모를까, 정치와 공직의 영역에서 그러면 곤란하다.

이런 사례를 들자면 많다. 올해 1월22일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은 ‘방첩사 수사관과 국정원 조사관들이 수갑을 채워서 벙커에 갖다 넣는 일을 대한민국이 하면 안 되는 것 아니냐, 그런 일이 매일 일어나는 곳이 평양이고, 그런 일을 매일 하는 곳이 북한 보위부’라고 얘기했다.

언론과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된 이 발언은 홍 전 차장이 계엄 당일 옳은 선택을 했다는 것을 보여줄진 몰라도, 그의 국정원 소속 공직자로서의 직무수행 전반에 대해 알려주지는 못한다. 그건 따로 평가해야 하는 부분이다.

미국의 전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는, 고위 공직은 이미 쌓아둔 지적 자본을 소진하는 자리이지 이를 축적하는 자리가 아니며, 대부분의 고위 공직자는 그들이 자리를 맡을 때 이미 가지고 있던 인식과 판단력의 수준에서 직무를 수행하다 떠난다고 강조했다. 재직기간이 길어지며 능숙하게 직무를 수행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는 의사결정의 방법이 숙련되는 것이지 의사결정의 실질이 성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런 통찰에 비추어 보면, 대통령 후보나 고위 공직자에 대한 평가는 그가 살아온 행적이나 이력을 토대로 종합적으로 그리고 보수적으로 해야 한다. 인상적 발언이나 에피소드를 근거로 하기에는 그들의 직무수행이 국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나 크다.

물론 생업에 바쁜 국민이 일일이 평가하기 어려울 때도 많고, 책임 있는 정부당국이나 언론의 검증과 비판이 부실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을 보면 그들의 후보자 시절부터 국민들이 갖고 있던 정보와 인식, 그들에 대한 평가와 기대는 크게 틀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한계를 지적하며 이를 뛰어넘길 기대했지만, 대다수 대통령은 기대치의 상한선까지 가기보다 하한선 쪽에 머물렀다.

윤석열 대통령의 경우 비상계엄을 선포하여 탄핵소추 대상이 될 것이라 예상한 사람은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손에 임금 왕(王)자를 쓰고 토론에 나왔다는 것은 다들 아는 사실이다. 그는 실제로 법의 지배에 복종하는 공직자가 아니라 법 위에 군림하는 권력자가 되고자 했다. 12월3일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그는 감추지 않았고 우리는 알았다.

민주정치의 위기를 겪지 않는 나라가 드물다. 유튜브와 소셜미디어 시대에 가짜뉴스와 음모론을 우리만 피해가기 어려울지 모르겠다. 이번에 겪는 실패는 환율 같은 거시경제, 자영업을 비롯한 민생경제, 트럼프 2기에 대비해야 하는 외교 등 모든 면에서 대가가 너무 크다. 하지만 극복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미리 패배를 선언할 이유는 없다. 지금은 큰 대가를 치르며 실패를 수습하고 있지만, 다음에는 그런 일을 반복하지 않고 정치인과 공직자를 엄하게 평가하는 유권자의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원칙론이지만, 결과를 짊어질 사람들이 제대로 선택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지 않나.

정치인의 특정한 한두 가지 면만 보지 말고, 뽑아 주면 잘할 것이라는 기대를 섞지 않아야 한다. 정치인의 과거가 축적된 총합인 지금 현재의 모습을 회의와 의심의 눈으로 평가하면 된다. 정치인에게는 일을 맡기고 시키면 되지, 국민이 그들을 숭배할 이유도 없고 키워서 쓸 이유도 없다.

유정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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