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5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잠시 눈을 감고 있다. 2025.02.04. 이준헌 기자
12·3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수감 중인 대통령 윤석열이 이상민 당시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경향신문 등 언론사의 봉쇄·단전·단수 조치를 취하라고 직접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조치는 시민을 학살하고 총칼로 권력을 탈취한 5공 군사정권도 하지 않았다. 윤석열은 지난 3일 서울구치소에 면회 온 여당 지도부에 민주당이 입법 독주를 한다면서 ‘나치 독재’에 빗댔다는데, 비판 언론을 압살하려 한 윤석열의 위헌적 행위야말로 나치나 벌일 법한 짓이다.
검찰이 국회에 제출한 윤석열 공소장을 보면, 윤석열은 12·3 비상계엄 선포 직전 대통령 집무실로 들어온 이 전 장관에게 ‘24시경 경향신문, 한겨레, MBC, JTBC, 여론조사 꽃을 봉쇄하고 소방청을 통해 단전·단수를 하라’는 내용이 적힌 메모를 보여주며 비상계엄 선포 이후 조치하라고 지시했다.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의 신문 제작과 방송 송출을 아예 막으려 한 것이다. 이에 이 전 장관은 계엄 선포 직후 경찰의 조치 상황 등을 확인한 뒤 허석곤 소방청장에게 ‘24시경 경향신문, 한겨레, MBC, JTBC, 여론조사 꽃에 경찰이 투입될 것인데 경찰청에서 단전·단수 협조 요청이 오면 조치해 줘라’고 지시했다. 이 지시를 허 청장은 이영팔 소방청 차장에게, 이 차장은 황기석 서울소방재난본부장에게 전달했다.
이 전 장관이 비상계엄 선포 직후 ‘언론사에 대한 단전·단수 조치가 있을 테니 협조하라’고 지시한 사실은 지난달 중순 허 청장이 국회에서 실토해 알려졌지만, 그게 윤석열 지시에 따른 것이었음이 확인된 건 처음이다. 이 전 장관은 지난달 22일 국회 내란 국정조사특위 1차 청문회에서 관련 질의에 “답변하지 않겠다”고 했다. 위증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지 않으려 증인 선서도 거부했다. 시민의 저항과 국회의 신속한 대응으로 비상계엄이 실패해 실행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이런 조치를 계획한 것 자체가 내란이고, 중간 지시자인 자신도 법적 책임을 피하기 힘들다는 걸 법률가인 이 전 장관이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윤석열 정권 내내 언론사·기자에 대한 압수수색과 기소가 이어졌다. 방통위·방심위를 통한 언론탄압은 일상이었다. 언론사 봉쇄·단전·단수 계획도 그 연장선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런 조치는 비판 언론을 말살 대상으로 보지 않으면 생각할 수 없고, 언론의 권력 감시·감독이 없는 전체주의를 꿈꿨다고 볼 수밖에 없다.
윤석열은 4일 헌재의 탄핵심판 변론에서 “실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며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을 막으려 한 사실을 부인했다. 그러나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국회 내란특위 2차 청문회에서 윤석열이 국회에서 의원을 끌어내라고 지시한 게 맞다고 거듭 증언했다. 이런 증언·증거가 차고 넘친다. 그런데도 “국회에서 끌어내라고 한 건 의원이 아니라 요원”이라고 우길 텐가. 헌정 질서를 유린한 범죄가 실패했다고 범죄를 시도한 사실까지 없어지지 않는다는 걸 윤석열은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