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신용등급 추락 피할 수 있을까?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국가신용등급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이는 한 나라의 경제 신뢰도를 나타내며, 투자자들에게 중요한 신호로 작용한다. 신용등급이 낮아지면 국채 금리 상승, 외국인 자금 유출, 기업과 금융기관의 대출 비용 증가로 이어지며, 이는 정부 재정 부담 증가와 경제 성장 둔화를 초래할 수 있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신용등급이 대폭 하락한 이후 꾸준한 경제 성장과 재정 건전성을 바탕으로 신용등급을 회복해왔다. 현재 한국의 신용등급은 스탠더드앤드푸어스 기준 AA(공동 18위, 상위 13.6%), 무디스 기준 Aa2(공동 15위, 상위 10.5%), 피치 기준 AA-(공동 20위, 상위 16.3%)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2016년 이후 변동이 없었던 한국의 신용등급이 정치적 불확실성과 경제적 변수들로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대통령 탄핵 심판과 내란죄 재판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으며, 탄핵이 인용될 경우 대선이 즉시 치러진다. 정치적 혼란 속에서 행정부의 정책 수행 능력은 사실상 마비되었다. 여기에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2025년 1월20일부터 재집권하면서 보호무역주의를 다시 강화했다. 트럼프 2기 정부는 한·미 FTA 재협상, 자동차·반도체·배터리 산업의 미국 내 생산 확대 압박과 함께, 미국의 8위 무역적자국가인 한국을 대상으로 강력한 통상 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크다. 대내외적으로 혼란한 상황이 지속될 경우 한국의 신용등급이 흔들릴 가능성은 더 이상 가정이 아니라 현실이 될 수 있다.

신용평가사들은 경제지표뿐만 아니라, 정치적 안정성과 법치주의 수준도 중요한 평가 요소로 삼는다. 특히 무디스는 국가신용등급을 평가할 때 ‘시민사회(Voice and Accountability)’와 ‘법치주의(Rule of Law)’ 지수를 핵심 요소로 반영하는데, 한국은 이미 하향 경계선에 있다. 탄핵 심판과 내란죄 재판이 정치적 혼란을 가중시킨다면, 신용등급 하향 조정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또한, 무디스 기준 최상위 18개 국가(Aa2 이상 등급) 중에서 2차 대전 이후에 계엄이 선포된 사례는 한국이 유일하다. 이는 신용평가사들이 한국을 ‘정치적 안정성이 확보된 선진국’으로 보던 기존의 인식을 뒤흔드는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프랑스와 벨기에조차 정치적 불확실성만으로 신용등급이 하락했던 전례를 고려하면, 비상계엄으로 촉발된 대통령 탄핵 심판과 내란죄 재판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한국이 신용등급을 유지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환상에 가깝다.

정치적 불안정성뿐만 아니라, 경제적 지표도 신용등급 하향 조정을 가리키고 있다. 첫째, 성장률 둔화가 심각하다. 정부는 2025년 경제성장률 전망을 1.8%로 하향 조정했으며, 한국은행은 1.6~1.7%로 전망하고 있다. 피치는 한국의 성장률이 1.7% 이하로 떨어질 경우 AA- 등급 유지가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재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성장률이 1.5% 이하로 하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둘째, 재정 악화다. 최근 한국의 재정 상황이 악화된 가장 큰 이유는 윤석열 정부의 감세 정책과 긴축적 재정운영으로 인한 세수결손 때문이다. 감세와 경기 침체가 맞물리며 세입 기반이 급격히 약화되었고, 이를 보완할 대책 없이 재정을 운용한 결과 정부의 재정 신뢰도가 하락했다.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이 위협받는 것은 단순한 가능성이 아니라 현실적 문제다. 경제성장률 둔화, 세입기반 붕괴, 정치적 불안정, 그리고 트럼프 2기 정부의 통상 압박까지 한국 경제를 둘러싼 환경은 악화되고 있다. 이제 선택의 여지는 없다. 25조원 규모의 신속한 추경편성과 함께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통해 경기 침체를 막아야 한다.

그러나 경제 회복만으로 신용등급 강등을 막을 수 없다. 특히 한국의 경우, 최근 발생한 계엄사태와 내란죄 재판은 신용평가사들의 기준에서 전례 없는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정치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헌법 질서를 수호하고 법치주의를 확고히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또한, 내란죄 수사는 법치주의 원칙에 따라 투명하고 체계적으로 진행되어야 하며, 불필요한 정치적 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

국제사회와 신용평가사들은 한국이 위기 상황에서도 법과 제도를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지를 주시하고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는 새로운 질서가 정립되기 전까지 국가 운영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그 외의 모든 선택지는 신용등급 하락을 가져올 뿐이다.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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