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5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잠시 눈을 감고 있다. 이준헌 기자
국민의힘 내 부정선거론이 윤석열 대통령을 옹호하는 방식으로 고개를 들고 있다. 전날 비상계엄 청문회에서 여당 의원들은 윤 대통령 측의 부정선거 논리를 그대로 따르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비판했다. 김민전 의원 등 일부는 같은 당 의원들에게 부정선거와 관련된 글을 공유하는 식으로 여론조성에 나섰다. 당내에서조차 “부정선거와 엮어 계엄이 불가피했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판국”이라며 지도부 차원의 선 긋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전날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국조특위)는 2차 청문회에서 선관위를 상대로 부정선거론자들이 제기하는 의혹을 집중적으로 물었다. 야당 의원들은 “내란특위 청문회인데 국민의힘 의원들이 공정선거를 부정선거로 둔갑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여당 의원들의 질의는 윤 대통령과 변호인단이 비상계엄 이후 메시지, 탄핵심판 변론 과정에서 밝힌 부정선거 주장과 다르지 않았다. 박준태 의원은 “전산서버 관리도 허술하다고 국정원 점검으로 나타났다. (비밀번호가) 12345였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윤 대통령 측이 헌법재판소에 보낸 답변서에서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비밀번호가 매우 단순하다”고 한 것과 같은 취지다. 지난달 16일 윤 대통령 변호인단은 탄핵심판 2차 변론에서 “전산시스템 비밀번호 12345는 중국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연결번호라 중국에서 풀고 들어오라고 설정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장동혁 의원은 “투표소에서 관리관 인(도장)이 뭉개져 찍힌 투표지가 발견됐고 법원이 육안으로 확인해 관리관이 확인이 어려울 정도에 이른다고 판정한 것은 총 294표”라며 “무효표로 판정된 투표지를 현미경으로 판단한 결과 상당 부분 투표관리인이 확인됐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는 대통령 탄핵심판 3차 변론 중 윤 대통령 측도 주장한 내용이다. 선관위는 “투표관리관인이 뭉개진 투표지가 나왔다고 해서 부정투입의 증거라고 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강선영 의원이 주장한 ‘국정원 보안점검결과 통합선거인명부시스템 해킹 취약성’ 주장 역시 탄핵심판 4차 변론 중 윤 대통령 측 변호인단이 “국정원이 선거관리시스템의 5%만 점검했는데 그 보안성이 지극히 취약해 아무나 해킹해서 선거결과를 조작할 수 있다고 보고했다”고 주장한 것과 같은 취지다. 선관위는 “자체 보안시스템을 일부 적용하지 않은 모의해킹이었다”고 반박했다. 이외에도 여당에서 제기한 사전투표제도와 관리에 대한 비판 등도 윤 대통령 측 주장과 동일했다.
친윤석열계인 김민전 의원은 의원들이 모인 텔레그램 단체방에 최근까지도 부정선거와 관련된 글을 공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3일 기자와 만나 “김 의원이 한 차례 비판을 받은 뒤 며칠 전에도 부정선거 (글을) 하나 더 올렸다. 이런 분위기가 많다”며 “부정선거랑 계엄을 섞어서 얘기하면서 계엄은 불가피했고 탄핵은 기각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의원들이 있다”고 말했다. 박수민 의원은 ‘선거제도건강검진법’이라고 명명한 부정선거 논란 해소 특별법 발의를 추진한다. 신동욱 수석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저희 당은 부정선거를 신뢰하는 건 아니지만 국민들이 더 믿을 수 있는 선거제도를 만들자는 취지의 법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이 부정선거론을 펴는 것은 부정선거론을 믿는 보수 표심을 잡기 위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최근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등 극우뿐 아니라 일부 보수층까지 동조에 나섰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임종득 의원도 전날 청문회에서 “선거부정 의혹은 극우만의 문제(제기)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다만 국조특위 소속 한 국민의힘 의원은 기자와 통화하면서 “말을 맞춘 건 전혀 아니다. 저도 놀랐다”며 “민주당이 증인을 일방적으로 채택하다보니 질문할 대상이 선관위 정도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당내 소장파, 비윤석열계 의원들은 지도부 차원에서 선긋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조직부총장인 김재섭 의원은 이날 SBS라디오에서 부정선거 의혹과 관련해 “국민의힘에서 공식적으로 ‘아니다’라고 얘기를 해야 될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대통령도 2022년 본인의 대통령선거에서 사전투표하셨다”며 “계속 암처럼 퍼지고 있는 부정선거 음모론은 우리가 공식적으로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 비윤석열계 의원은 “당이 처음에는 계엄, 탄핵에 반대했다가 두 달 만에 ‘계엄이 불가피했다, 더 나아가 탄핵은 기각되고 대통령이 돌아와야 된다’는 것까지 갔다”며 “지금이라도 대통령 제명이든 탈당이든 뭘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