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아트랩 2025
고요손 작가의 제안으로 전민철과 협업
“불멍이 소원” 말에 불 쬐는 무릎을 표현
전민철이 함께 조각한 작품도
김유자·노송희·장다은·장영해 작품도 전시

고요손 ‘전민철, 추운 바람과 모닥불(온기)’, 2025, 열선, 타이즈, 석고붕대, 레진, 바늘, 실, 철사, 철재, 60 × 48 × 60cm 두산아트센터 제공
곧 세계 정상급 발레단인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에 입단하는 발레리노 전민철의 소원은 무엇일까.
고요손 작가에게 전민철이 내놓은 대답은 소박하게도 ‘불멍’이었다. 마린스키행을 앞두고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는 전민철의 소원을 고요손은 작품을 통해서 들어주고 싶었다. 그렇게 ‘전민철, 추운 바람과 모닥불’ 시리즈가 탄생했다.
두산아트랩 2025 전시가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전시장에 들어서면 어딘가 앉아있는 모습의 하얀 다리가 보인다. 연약해 보이기도, 강인해 보이기도 하는 다리다. 전민철의 실제 다리를 석고로 뜬 것으로, 무릎에 손을 얹어보면 따스한 온기가 전해진다. ‘전민철, 추운 바람과 모닥불(온기)’다.
“불멍이 소원이라고까지 말하는 민철의 바쁜 일상이 안타까웠고, 제 작업을 통해서 여유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불을 쬘 때 무릎 쪽이 가장 뜨겁다는 것에 착안해 무릎에 열선을 연결해 손을 대면 온기가 느껴지게 했어요.”(고요손)

고요손 〈전민철, 추운 바람과 모닥불(너, 그 자체만으로)〉, 2025, 알루미늄, 유리, 낚싯줄, 192 × 65 × 60cm 두산아트센터 제공

<라 바야데르>의 전민철. ⓒKyoungjin Kim·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전민철이 직접 조각에 참여한 작품도 있다. 발레리노의 우아한 동작을 얇은 선으로 표현한 듯한 작품명은 ‘전민철, 추운 바람과 모닥불(너, 그 자체만으로)’다. 전민철이 연습을 수없이 해도 무대에서 실수할 수 있는 발레와 달리, 조각은 리허설이 완벽히 끝난 상태에서 무대에 세울 수 있다는 게 부럽다고 한 말에서 착안했다.
“충분한 리허설에 대한 욕망을 조각을 통해 실현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스티로폼과 같이 연약한 재료를 민철이 깎아내리는 과정을 거쳤어요. ‘너는 나에게 연약함을 그대로 주면, 내가 단단한 알루미늄으로 주물을 떠 완성할게’라는 마음으로 작업했습니다.”
발레리노에게 가장 연약하면서도 강인한 부위는 발일 것이다. 상처와 물집으로 가득한 발로 회전과 점프 등의 동작을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 가늘고 긴 선으로 이뤄진 작품의 끝은 부서질 것 같이 아슬아슬한 유리로 만들어졌다.
세계 정상급에 선 전민철도 어린 시절엔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혔다. 2017년 SBS <영재발굴단>에 출연했을 당시 아버지가 ‘남자가 무용으로 성공하기 쉽지 않다’고 말하자 어린 전민철은 “그건 다른 사람이잖아” “아빠 눈에는 내 행복한 모습은 안 보여?”라고 말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됐던 장면을 본 고요손이 전민철에게 협업을 제안하면서 작업이 시작됐다. “전민철이 꿈을 현실화시키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이 노력하고 에너지를 쏟았을까 궁금해졌고, 그 에너지를 제 조각에 흡수해보고 싶었다. 그 안에 담긴 이면의 이야기들을 알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중순 첫 만남에서 나눈 대화가 작품의 주제가 됐다.

두산아트랩 2025 전시 전경. 두산아트센터 제공
두산아트랩은 35세 이하의 신진 작가를 발굴하는 공모전이다. 매년 5명의 작가를 선정해 단체전을 연다. 올해는 고요손, 김유자, 노송희, 장다은, 장영해 작가가 선정됐다.
장영해는 골프장으로 덮여 버린 경산 코발트광산 학살 현장을 카메라에 담은 영상 ‘annie, cobalt’를 선보인다. 보도연맹 학살 사건으로 3000명이 묻힌 자리, 500구의 시신만 발굴되고 완료되지 않은 곳에 골프장이 들어선 모습을 통해 폭력이 익숙한 환경으로 스며드는 메커니즘을 드러낸다.
김유자는 사진을 통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질문하는 연작을 선보인다. 노송희는 두산갤러리 공간을 자신의 지난 작업을 망라하는 가상의 전시공간으로 재해석한 영상 작업을 선보인다. 장다은은 두 개의 시공간을 만드는 장치 ‘막’을 소재로 여섯 개의 창문들에 담긴 서사를 설치 작품으로 그려냈다. 전시는 3월8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