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출항 어업정지 최장 30일·구명조끼 착용 확대 등 어선 안전관리 강화

주영재 기자
서해상에 풍랑주의보가 내려진 지난 3일 오전 인천 중구 인천항 연안부두에 어선들이 정박해 있다. 연합뉴스

서해상에 풍랑주의보가 내려진 지난 3일 오전 인천 중구 인천항 연안부두에 어선들이 정박해 있다. 연합뉴스

앞으로 어선 입·출항을 신고하지 않거나, 승선인원을 허위 신고하는 등 불법 행위를 하다가 적발되면 최장 30일의 어업정지 처분을 받게 된다. 2인 이하 승선 어선에서 구명조끼 착용이 의무화되고, 외국인 선원을 대상으로 한 안전교육도 강화된다.

행정안전부와 해양수산부, 해양경찰청, 기상청 등 관계 부처와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해양 선박(어선) 사고 재난원인조사반’은 5일 이런 방안을 담은 어선 사고 인명피해 방지대책을 발표했다.

해양사고로 인한 인명피해 대부분은 어선 사고로 발생한다. 조사반에 따르면 어선 사고 건수는 2019∼2023년 5년간 9602건으로, 전체 해양 선박사고(1만4802건)의 64.9%를 차지했다. 어선 사고로 사망 305명(전체 78%), 실종 123명(84.2%), 부상 1593명(79.5%) 등 인명피해가 났다.

조사반은 이상기후와 외국인 선원 증가, 고령화로 어선 사고 시 인명피해가 더 확대될 것으로 우려했다. 최근 3년간 풍랑특보는 2022년 734건에서 이듬해 804건으로 늘었고, 2024년 10월까지 734건이 발표됐다. 어가 인구 중 65세 이상 비율은 2014년 33.2%에서 2023년 48.0%로 증가했다.

매년 2000건 반복되는 어선 사고…‘허술한 안전관리’가 원인

조사반은 어선 사고의 주된 원인으로 허술한 안전관리 체계를 지목했다. 조사반에 따르면 어선안전조업법 상 어선 위치 발신 장치의 일종인 ‘선박패스(V-pass)’와 ‘바다내비(e-Nav)’ 장착 어선은 별도 절차 없이 입·출항이 가능하다.

어선의 편의를 돕는 조치지만, 어선이 장치를 차단한 후 입·출항할 경우 당국이 이를 파악하기 쉽지 않아 사고 대응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불법 출항 어선의 관리를 강화하기로 했다. 신고하지 않고 입출항하거나 승선인원을 허위로 신고해 어선 위치관리와 구조에 혼선을 주는 불법 행위가 반복 적발될 경우 어업정지 기간을 기존 15일에서 최장 30일로 늘린다.

출항 전 실시하는 자율 점검도 부실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5월 한 유람선이 출항 전 연료 점검을 하지 않았다가 울릉도 해상에서 기관 정지로 표류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업인들이 출항 전 선체와 기관, 장비 등을 점검할 때 무엇을 꼼꼼히 봐야 하는지 점검항목과 매뉴얼이 미비하다는 점도 지적됐다.

조사반은 ‘대해구’(가로·세로 50㎞) 단위의 해양 기상정보가 실제 조업 구역의 해상 기상과 맞지 않아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했다. 앞으로 위치별로 차이가 큰 해상기상 상황을 고려해 대해구에서 ‘소해구’(가로·세로 17㎞)’로 구역을 세분화해 해양 기상정보를 제공한다. 날씨알리미 앱으로 45곳의 주요 위험 지점의 실시간 너울 정보를 제공하고, 모바일 해양기상정보포털도 구축한다.

초동 대응에는 어선 위치 파악이나 상황전파가 중요하다. 조사반에서는 기관 간 사고 상황 전파가 팩스로만 이뤄져 정보 공유가 신속하지 않은 점이 개선 과제로 제시됐다. 이에 따라 팩스 외 ‘국가재난관리정보시스템(NDMS)’을 상황 전파에 활용할 것을 주문했다.

어선 사고 관할 지방자치단체가 불분명한 것도 문제로 거론됐다. 전남 여수와 가까운 경남 통영 해역에서 제주 선적 어선 사고가 났을 경우 관할 지자체가 분명하지 않아 신속한 대응이 이뤄지지 않았던 경우가 적지 않았다.

구명조끼 의무화 확대·어선의 구조 참여 수당 현실화

어선원 안전을 위해 구명조끼 착용 대상도 확대한다. 현재 기상특보 발효 중 갑판 작업을 할 때만 구명조끼를 착용하는데, 오는 10월19일부터 2인 이하 승선 시 배가 출항하는 순간부터 구명조끼를 착용해야 한다.

해수부 관계자는 “승선원이 2명 이하인 어선의 경우 나이 든 어업인이 많고, 바다에 추락하면 자력으로 올라오기 힘들기 때문이다”면서 “사고가 빈번한 업종과 어업활동을 조사해 점진적으로 의무 착용을 전 어선으로 확대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구명조끼 사용 편의성도 높이기로 했다. 어업인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92%가 구명조끼가 인명피해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보면서도 착용하지 않는 이유는 조업에 불편하기 때문이다.

보통 어선원은 작업복 위에 구명조끼를 입는데, 물에 빠지면 작업복에 물이 차면서 가라앉아 작업복을 빨리 벗어야 한다. 그 위에 구명조끼를 입으면 대처에 어려움이 있다. 여름엔 덥다는 단점도 있다. 정부는 팽창식 구명조끼를 우선 보급하고, 어업활동에 맞는 구명조끼도 새로 개발할 계획이다.

연근해 어선의 외국인 선원은 2003년 991명에서 2023년 1만199명으로 늘었다. 정부는 선장·선주·기관장 외에 외국인 선원까지 안전교육을 내실화하고, 항해·무선설비·해양기상 등 직무교육을 도입하기로 했다. 이를 위한 전담교육기관도 지정할 계획이다.

인근 어선이 구조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구조 참여 수당을 현행 7만8800원에 유류비를 더한 금액에서 약 30만원 수준으로 현실화하기로 했다. 전파 송수신소 재배치로 위치관리의 사각지대도 해소한다.

소형 어선을 위한 안전설비의 개발과 설치도 지원한다. 조난신호 발신 장치가 바다 위로 떠오르지 않더라도 위성통신이나 해양 LTE를 통해 자동 전송될 수 있는 장치 개발을 추진하기로 했다. 전체 어선의 80%를 차지하는 5t 미만 어선 운항에도 자격 제도가 도입된다. 2t 미만 어선에서 조업 중 전복 사고가 발생해도 조업자가 어선으로 자력 복귀할 수 있도록 안전 사다리 설치를 지원한다.

구조 변경을 비롯해 어선을 불법 증·개축할 경우 선주뿐만 아니라 건조·개조업자도 처벌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다.

재난원인조사반장인 국승기 한국해양대학교 교수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그간 어선 사고 원인을 자세히 살피고 분석했다”면서 “민관이 함께 마련한 이번 대책이 어업 현장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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