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할리우드가 최고의 영화 축제를 앞두고 들썩이고 있다. 최고 권위 영화 시상식인 제97회 아카데미 어워드가 오는 3월2일(현지시간) 열리기 때문이다. 로스앤젤레스(LA) 돌비극장에서 열리는 이번 시상식은 LA를 덮친 대형 산불로 인해 조촐하게 치러질 예정이지만 열기만큼은 뜨겁다.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는 성전환 수술을 받은 멕시코 마약상의 이야기다.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역대 비영어 영화 중 최다 부문 후보작에 올랐다.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에밀리아 페레즈>, 오스카 휩쓸까
넷플릭스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는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 최고 화제작이다.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조연상, 외국어영화상, 촬영상, 각색상 등 12개 부문에서 총 13개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역대 비영어 영화 중 최고 기록이다. 프랑스 거장 자크 오디아르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당국의 추적을 피해 성전환 수술을 받고 여성이 된 멕시코 마약상의 이야기를 그린다. <에밀리아 페레즈>가 최고상인 작품상을 받는다면 2020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이어 외국어 영화로는 두 번째 수상이 된다.

영화 <브루탈리스트>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건축가의 미국 생존기를 그린다. UPI코리아 제공
<브루탈리스트>와 인공지능(AI)
남우주연상 등 총 10개 부문에 후보로 오른 에이드리언 브로디 주연의 시대극 <브루탈리스트>는 시상식 전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브루탈리스트>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헝가리 건축가가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해 미국에서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평단의 호평과 함께 베니스영화제, 골든글로브 등을 휩쓸었다.
그러나 극중 배우들의 헝가리 억양을 AI 기술로 자연스럽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며 자격 논란에 휩싸였다. 억양 역시 연기의 일부인 만큼 인위적 교정이 연기의 진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세계 영화계의 AI 활용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 만큼 <브루탈리스트>의 수상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영화 <서브스턴스>로 제 2의 전성기를 맞은 데미 무어는 골든글로브에 이어 아카데미에서도 여우주연상을 노린다. 찬란 제공
데미 무어, 오스카까지 접수?
여우주연상은 아카데미 시상식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다. 올해는 <아노라>의 미키 매디슨, <아임 스틸 히어>의 페르난다 토레스, <위키드>의 신시아 이리보 등 총 5명이 후보로 지명됐다. 이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보디 호러물 <서브스턴스>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은 데미 무어다. ‘한물간 여배우’ 연기로 생애 첫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받은 무어가 아카데미까지 거머쥔다면 이보다 더 극적인 드라마도 없을 것이다.
한편 트랜스젠더로는 최초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에밀리아 페레즈>의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은 시상식을 앞두고 구설에 휩싸였다. 과거 SNS에서 인종 및 신앙 차별 발언을 한 것이 뒤늦게 알려진 것이다. 비판이 커지자 가스콘은 사과했다. 아카데미 후보에서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도 밝혔다. 그러나 넷플릭스는 이미 거리두기를 시작했다. 각종 홍보 캠페인에서 가스콘을 제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젊은 시절을 그린 영화 <어프렌티스>의 주연 배우 세바스찬 스탠은 남우주연상 후보로 올랐다. 누리픽쳐스 제공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에서 밥 딜런을 연기한 티모시 샬라메는 남주우연상 후보에 올랐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치열한 남우주연상···‘반 트럼프’ 후보도
남우주연상을 둘러싼 경쟁은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올해 후보는 총 5명이다. 전기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에서 밥 딜런을 연기해 호평을 받은 청춘 스타 티모테 샬라메, <브루탈리스트>로 골든글로브를 꿰찬 에이드리언 브로디, <어프렌티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 세바스찬 스탠, 교황 선출 선거를 다룬 <콘클라베>의 레이프 파인스다. 하나같이 쟁쟁한 후보인 만큼 수상 가능성을 쉽게 예측할 수 없다.
이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을 연기한 세바스찬 스탠은 ‘반 트럼프’ 후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지난해 대선 직전 개봉한 <어프렌티스>는 트럼프 당시 후보의 공개 저격을 받았다. 만약 스탠이 트로피를 거머쥘 경우 정치적 파장이 일 수 있다. 할리우드 및 아카데미는 지난 수년 간 트럼프와 긴장 관계를 유지해왔다. 다만 현지에선 그의 수상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보고 있다.
역대급 산불에 조촐해진 시상식
지난달부터 LA를 할퀴고 있는 화마는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올해 시상식에서는 주제가상 후보 가수들의 축하 공연을 볼 수 없을 예정이다. 최악의 산불로 수만 명이 집을 잃은 가운데 이뤄지는 행사인 만큼 예년보다 소박하게 치른다는 것이다. 주최 측은 산불을 이유로 각 부문 후보자 발표 역시 두 차례 연기했다.
시상식을 주관하는 미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의 빌 크레이머 CEO는 지난달 시상식 개최를 발표하면서 “이번 시상식은 글로벌 영화 공동체로서 우리를 하나로 묶는 작품들을 기념하고, 산불에 맞서 용감하게 싸운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11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맨더빌 캐니언의 주거 지역이 산불로 인한 연기로 가득차있다. 로스앤젤레스|AP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