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P “미, 분쟁에 더 끌어들여”
NYT “뻔뻔한 아이디어” 평가
학계선 “중동에 파장 상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른바 ‘세계의 경찰’로서 미국의 역할을 거부하고 불개입주의 노선을 표방해왔다는 점에서 가자지구를 장악하고 팔레스타인 주민을 영구 이주시키겠다는 4일(현지시간) 발언은 폭탄선언에 가까웠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1기 정부에선 중동 갈등에서 손을 떼겠다는 입장을 취해왔는데 이번엔 정반대의 메시지를 내놓은 것”이라며 “이것이 2기 대외정책의 완전한 유턴이 될지는 지켜봐야겠으나, 전통적인 외교 문법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당황스러운 노선 변화”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이 형식적으로나마 취해왔던 갈등의 ‘중재자’ 역할은 완전히 폐기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의 그 어떤 지도자도 내놓지 않았던 가장 뻔뻔한 아이디어”라며 “이는 서구 열강들이 지역민들의 자결권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중동 지도를 그리고 주민들을 이주시킨 (제국주의) 시대를 연상케 한다”고 짚었다. 워싱턴포스트도 “미국을 중동 분쟁에 더 깊이 끌어들일 방안”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가자지구가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옥”이 됐다며 집단 이주의 이유로 인도주의적 명분을 내세웠으나, 19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인한 ‘나크바(대재앙)’, 즉 강제 이주의 역사적 상흔을 안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이는 제2의 나크바와 다름없는 일이다.
구상의 실현 가능성에도 물음표가 찍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동의 다른 나라 정상들과 대화했고 그들도 이 구상을 매우 좋아한다”고 주장했으나, 이집트와 요르단은 물론 주변 아랍국 모두 강제 이주와 난민 수용에 반대하고 있다.
인 교수는 “요르단과 이집트가 아무리 미국의 군사 원조에 의존한다고 해도 200만명이 넘는 난민을 감당할 여력이 안 된다”면서 “그러면 중동지역 내 다른 아랍 부국들이 부담을 나눠야 하는데, 이들 국가 대부분이 왕정이고 정통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인들을 쫓아내는 데 협조한다면 거센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수 있다”고 짚었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이 구상을 밀어붙인다면 미국을 ‘제국주의적 패권 국가’로 보는 중동지역 내 반미 여론이 더욱 확산하는 것은 물론 트럼프 정부가 추진해온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 정상화도 어그러질 가능성이 높다.
성일광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교수는 “트럼프의 행보로 미뤄봤을 때 100%는 어렵다고 해도 어떻게든 자신의 구상을 실현하려 할 것이며, 단순한 엄포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면서 “당장 휴전 문제를 비롯해 중동지역에 파장이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