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선에 대한 경제적 해석을 이어가겠다.
첫째, 바꿔보자는 선택이다. 성장, 고용, 주가 등 지표 호조에도, 미국 경제가 좋다고 답하는 유권자가 3분의 1에 불과했다.
해리스는 보호주의 색채를 강화하고, 중산층의 생활비 부담을 대기업의 탐욕과 연결해 가격통제를 시사하는 등 포퓰리즘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바이드노믹스와 차별화하거나 새 경제비전을 세우지 못했다. 트럼프는 해리스를 사회주의자로 규정하며 재계의 두려움을 유도하고, 감세와 규제 완화의 기대감을 조장했다. 트럼프 경제공약이 극단적 내용이 많고 상호 모순됨에도, 현 상황에 불만족한 유권자들은 “일단 바꿔보자”고 선택했을 수 있다.
둘째, ‘미국 없는 세계’로 가는 방향성이 분명해지고 있다. 피터 자이한은, 미국이 고립주의로 전환하는 것은 냉전이 끝난 상황에서 셰일혁명으로 에너지 자립을 얻어 국제분쟁에 개입할 명분과 실리가 없고 국내문제에 대한 대처가 급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미국의 ‘세계경찰’ 역할 축소로 국제질서가 흔들리면 지정학적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2차대전 이후 패권국 지위를 가진 미국이 국제질서에 필요한 공공재를 무상 제공해 왔다면, 이제 동맹에 안보와 경제 관계에 대한 비용을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는 한국에 대해서도 관세를 협상카드로 삼으면서, 방위비와 주한미군 이슈를 제기하는 등 납세자 부담을 줄이기 위한 공세적 시도를 할 것 같다.
셋째, 세상이 바뀔 땐 예측이 어려워진다. 뒤처진 이들의 분노를 포착한 트럼프는 그들 편에서 ‘기득권과 싸우는 전사’ ‘세상을 바꿀 혁명가’로 입지를 세웠다. 2차대전 후 미국이 주도해온 자유무역, 다자주의, 동맹에 기초한 세계질서를 미 대통령이 나서 재편하려 한다.
폴리마켓의 베팅을 보면, 8월 중순까지 해리스의 근소한 우세, 10월 초 트럼프 우세로 전환, 10월 말에 트럼프의 큰 폭 우세, 선거 직전에는 격차가 줄어들었다.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10월 중순까지 트럼프가 불리하다가 10월 말에 우세로 전환, 선거 직전에는 다시 열세로 예측했다. 2016년의 예측이 클린턴의 승리였고 2024년에는 박빙이었으니, 두 번 다 예측이 틀린 셈이다.
트럼프 2기의 요직이 충성파로 채워지고 있고 공화당이 양원 모두 다수를 차지함에 따라, 세계 경제에는 새로운 불확실성과 꼬리위험이 추가된 모습이다. 경제위기가 기존 구조나 질서의 변화에 대한 ‘지적(知的) 실패’와 연관된다면, 현재의 부채 누적, 금융의 연결성, 국가 간 갈등, 인간의 비합리적 속성이 충격을 야기할 가능성이 커졌다.
넷째, 문제는 내부에 있다. 세계질서를 형성하고 변화시켜나가는 1차 동력은 미국이다. 미국의 문제는 심리적 내전상태로 평가되는 정치 양극화에서 두드러지지만, 정치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사회문화, 대중의 심리이고, 그 저변에 경제가 있다. 상부-하부구조 관계에서, 미국 내 생산관계, 소득 및 자산의 분배를 둘러싼 갈등이 세계질서 변화를 촉발하고 있다는 관점을 가지게 된다. 현 세계경제는 각자도생, 보호주의, 산업정책, 관세전쟁으로 점철되었던 대공황 당시를 연상시킨다.
다섯째, 트럼프와 머스크의 브로맨스는 해피엔딩할까? 머스크는 정부기관 축소와 함께 공격적 규제 완화를 주도하면서 성과를 내려고 할 것이다. 주된 규제 완화 대상으로는 가상자산, AI, 대기업 반독점, 화석연료, 대형은행 보고의무로 예상된다.
시장은 머스크가 테슬라, 스페이스X, X의 경영에 도움을 얻을 것으로 본다. 머스크가 푸틴, 중국공산당과의 직거래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해 온 점에 비추어, 트럼프-머스크 연대 역시 ‘돈과 권력의 결합’ ‘룰과 제도의 무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로 연결된다. 기업활동에 대한 모든 장애와 정부 간섭을 걷어내는 것을 목표로 삼는 기술자유주의자들이 정치권력화하려는 신호로도 해석된다. 누구에게도 신세졌다고 생각하는 법이 없고 쓰던 사람을 쉽게 버려온 트럼프가 머스크에게 특별 대우를 계속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관측도 있다.
트럼프가 실행할 무역전쟁에서 미국은 시장규모와 경제구조의 다변성으로 버틸 수 있겠지만, 여타 경제는 성장과 무역 감소, 인플레, 공급망 불안으로 취약해질 것이다.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일까? 세계질서의 틀이 변하고, 공급망과 시장이 쪼개지는 상황에서, 국가 간, 기업 간 ‘경쟁력’에서 단연 앞서는 것, 한국 아니면 안 되는 가치사슬을 만드는 것 외에 다른 길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사회통합을 강화하고 안전망을 확충해 나가기 위해서도 그렇다.

이호승 전 대통령실 정책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