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영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6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책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6일 “사전투표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부정선거를 막기 위해 사전투표 제도를 폐지하라’는 극단 지지층의 주장에 호응한 것이다. 여당이 강경보수·극우 세력의 부정선거 음모론에 동조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권 비대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신년 기자 간담회를 열고 ‘부정선거 주장과 사전투표 폐지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그는 또 “굉장히 많은 분들이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봐서는 현 시스템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지 않도록 투표 절차나 방법, 제도를 들여다볼 필요는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은 투표용지를 위조하거나 투표함을 바꿔치기할 수 있다며 사전투표 폐지를 주장한다.
권 비대위원장은 “사전투표를 하게 되면 과연 우리 유권자들이 제대로 된, 깊이 생각한 결정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인가 하는 의문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같은 당 박수민 의원의 ‘부정선거 논란 해소 특별법’ 발의에 대해 “충분히 검토할 만하다”고 말했다.
권 비대위원장은 부정선거 의혹 제기에 앞장선 극우 유튜버 전광훈 목사 집회에 여당 의원 일부가 동참하는 데 대해서도 “더불어민주당 사람들은 조국혁신당·민(주)노총 집회도 가서 위태위태한 발언도 많이 한다”며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문제삼을 정도까진 아니다”라고 옹호했다. 한 당 지도부 관계자는 기자와 만나 “야권이 부정선거 의혹을 말하는 사람들을 ‘틀딱(노인을 비하하는 말)’ 취급하며 갈라치기하는 게 문제”라며 “괜한 정치적 분열과 의구심을 키우기보다 이를 해소할 제도 개선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친한동훈(친한)계에서도 부정선거 의혹 차단을 위해 사전투표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류제화 세종시갑 당협위원장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정치권도 음모론으로 치부하지 말고 이번에 부정선거론을 뿌리 뽑았으면 좋겠다”며 “한동훈 전 대표는 사전투표를 폐지하고 본투표 기간을 늘리자는 주장을 했다”고 말했다. 김준호 전 대변인도 “사전투표를 폐지하고 본투표 기간을 늘려 더 이상의 국민 분열과 부정선거의 망령에서 벗어나자”라고 말했다.
‘사전투표 재고’ 주장은 여당의 기존 입장을 뒤집은 것이다. 앞서 여당은 2022년 대선 등에서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사전투표를 독려했다. 부정선거 의혹을 주장하는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대선 때는 직접 사전투표에 나서며 투표를 당부했다. 그러나 최근 여론조사에서 강성 보수 지지층 결집에 당 지지율이 상승하자 이들의 부정선거 주장에 발 맞추며 사전투표 관련 입장도 바꾼 것으로 보인다.
여당은 사전투표에 대한 ‘국민 다수의 문제 지적’을 말하지만, 실제론 사전투표에 대한 긍정적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해 3~5월 한국갤럽을 통해 3차례 제22대 4·10 국회의원 선거에 대한 유권자 의식조사를 한 결과, ‘사전투표제가 투표율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응답은 93.0%였다. 사전투표자의 25.1%는 ‘사전투표제가 없었다면 투표할 수 없었다’고 응답했다. 지난해 4·10 국회의원 선거에서 사전투표율은 31.3%로, 제21대 선거에 비해 4.6%포인트 상승했다.
당 안팎에선 권 비대위원장 발언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SNS에서 “여당이 부정선거 음모론에 올라타 이제는 사전투표 폐지까지 주장하고 나섰다”며 “이 정도면 반지성이 아니라 무지성”이라고 밝혔다. 그는 “선거권, 피선거권 연령 낮추는 것을 선도하던 보수 진영이 몇 년 만에 왜이리 바뀌었나”라며 “부정선거라는 망령을 쫓으며 보수궤멸로 몸을 던지는 무지성의 여당 의원들이 안타깝다”고 적었다.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도 전날 “계속 암처럼 퍼지고 있는 부정선거 음모론은 당이 공식적으로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논란이 커지자 당 비대위원장실은 입장을 내고 “(권 비대위원장이) 부정선거 주장에 동조한다는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비대위원장실은 “권 비대위원장은 타 모든 제도들과 마찬가지로 국민들이 의구심을 가진다면 제도를 재고할 필요성에 대해 말했다”며 “유권자의 알권리 보장과 ‘informed decision(정보가 제공된 결심)’을 위해 선거운동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