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시위대는 캘리포니아 의사당 건물 앞에서 ‘혐오는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 수 없다’고 적힌 팻말 등을 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을 확정(전환)한 트랜스젠더 운동선수가 여성 스포츠 경기에 출전하는 것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성별은 남과 여 둘뿐이라고 강조해온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한 달을 채우기도 전에 트랜스젠더 권리를 위협하는 조치를 줄줄이 내놓았다.
트럼프 “트랜스젠더, 여성 스포츠 출전 안 돼”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여성 스포츠에서 남성 참여 배제’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후 “앞으로 여성 스포츠는 여성만을 위한 것”이라며 “여성 스포츠에 대한 전쟁은 끝났다”고 밝혔다.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이번 서명식은 여성 스포츠 선수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둘러싼 상황에서 이뤄졌다.
이번 행정명령은 여성으로 성을 확정한 트랜스젠더 학생이 여성 스포츠 경기에 참여할 수 없다는 점을 명시했다. 이를 어긴 학교에는 성차별을 금지한 연방법 ‘타이틀 나인’ 위반을 이유로 연방 지원을 중단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2023년 ‘타이틀 나인’을 개정해 보호 대상 범위를 성소수자 청소년까지 확대한 조 바이든 행정부 정책을 정반대로 뒤집는 조치로 풀이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등 주요 스포츠 기구와 협력해 이런 지침이 교육 기관 외에서도 적용되도록 추진하겠다는 내용도 행정명령에 담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급진 좌파는 생물학적 성의 개념을 없애고 과격한 트랜스젠더 이념을 강요해왔다”라며 “미국은 트랜스젠더 광기를 단호히 거부한다는 것을 IOC에 분명히 하라고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에게) 지시했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여성으로 성을 확정한 트랜스젠더 학생이 여성 스포츠 경기에 참여할 수 없도록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트랜스젠더 겨냥, 벌써 네 번째…“괴롭힘·차별 커질 것” 우려
대선 후보 시절부터 트랜스젠더를 향한 공격 수위를 높이며 지지층 결집을 꾀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날 ‘미국 내 공식 성별은 남·여뿐’이란 내용의 행정명령을 시작으로 트랜스젠더의 권리를 제한하는 조치를 연달아 시행했다.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 금지, 19세 미만 청소년에 대한 성확정 의료 지원 제한에 이어 이날까지 네 번째 행정명령이다.
인권단체들은 이런 행정명령이 학교에서 소수자에 해당하는 특정 집단을 완전히 배제하는 문제를 낳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미국 최대 성소수자 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캠페인(HRC)의 켈리 로빈슨 대표는 성명을 내고 “이런 행정명령은 트랜스젠더뿐 아니라 모든 여학생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아이들을 괴롭힘과 차별에 노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수·진보 진영 간 ‘문화전쟁’을 부추기려는 트럼프 대통령이 트랜스젠더와 관련한 허위 사실을 강조하는 등 일부러 논란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미대학체육협회(NACC)에 따르면 약 51만명의 선수 중 트랜스젠더는 채 10명이 안 되는 데다, 트랜스젠더 운동선수가 실제로 여성 스포츠에서 신체적 특성에 따른 ‘불공정한 이점’을 누리는지 일관된 과학적 연구 결과가 없다는 것이다.
행정명령 줄줄이 제동 걸리나…‘반트럼프’ 시위도

5일(현지시간) 미국 미시간주 랜싱의 미시간 의사당 앞에서 사람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에 반대하는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트랜스젠더를 겨냥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일부는 이미 법원에서 제동이 걸렸다.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은 이날 교도소국이 트랜스젠더 여성 수감자를 남성 수감자와 함께 수용하거나, 이들의 성확정 치료를 중단토록 한 행정명령의 효력을 멈추는 가처분 결정을 내렸다.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금지한 행정명령은 군인 6명 등이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같은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후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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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 독주에 반대하는 시위도 미 전역에서 동시다발로 이어졌다. 이날 필라델피아와 캘리포니아, 미시간, 텍사스 일대 주요 도시에선 시민 수천명이 모여 트랜스젠더 권리 제한과 다양성 정책 폐기, 이민자 추방, ‘가자지구 장악’ 제안 등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몇 주 사이 몰아붙인 정책에 항의했다. 온라인에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50개 주에서 50건의 시위를 하루 동안 벌이자는 의미의 ‘#50501’ 해시태그가 퍼졌다.
시위에 참석한 이들은 “민주주의를 지키자” 등이 적힌 팻말과 성소수자에 대한 연대를 뜻하는 무지개 깃발을 들고나왔다.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서 시위에 참석한 시민 마가렛 윌메스는 “지난 2주간 진행된 민주주의의 변화에 경악스럽다”며 “그래서 저항에 나서려는 것”이라고 AP통신에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