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트럼프의 ‘홍수 전략’

정유진 논설위원

취임하자마자 전 세계를 정신 못 차리게 만들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방식에는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상상을 뛰어넘는 극단적인 정책들을, 압도적인 양으로, 한꺼번에 쏟아내는 것이다.

트럼프가 취임 후 불과 2주 동안 쏟아낸 행정명령은 무려 53개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취임 후 100일 동안 서명한 42개를 이미 뛰어넘었고,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100일과 비교하면 5배 수준이다. 내용 면에서도 트랜스젠더 군 복무 금지, 해외 원조 중단, 미등록 이민자 추방 등 하나하나가 모두 메가톤급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이 중에는 ‘출생시민권 폐지’처럼 대통령의 권한을 벗어나고 명백히 위헌적인 것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몰역사적인 ‘가자지구 영구 소유’ 발표도 그렇게 나왔다.

복수심에 불타는 트럼프가 앞뒤 재지 않고 위법적인 행정명령을 폭탄투하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사실 그의 언행은 철저한 계산에 따른 전략이다. 한때 트럼프의 책사였던 스티브 배넌은 과거 미 PBS 방송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언론은 멍청하고 게으르기 때문에 한 번에 한 가지에만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구역을 범람시키는 겁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매일 세 가지를 던져줄 거예요. 그러면 그들은 그중 하나를 물어뜯겠죠. 그동안 우리는 다른 모든 일들을 해치울 겁니다.”

일명 ‘홍수 전략’이다. 뉴욕타임스는 이 전략의 요점은 행정명령 자체가 아니라 상대방을 ‘압도’하는 것에 있다고 지적한다. 트럼프는 홍수처럼 쏟아낸 행정명령의 일부가 법원을 통과하지 못하리란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상관없다. 엄청난 양의 행정명령을 공격적으로 밀어붙이면, 일부를 막을 순 있어도 전부를 막을 순 없다. 살아남은 것들만으로도 엄청난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하지만 트럼프가 가진 권한은 결국 바이든이 가지고 있던 것과 똑같은 ‘대통령의 권한’일 뿐이다. 트럼프는 헌법을 마음대로 고칠 수 없고, 공화당이 근소하게 과반을 점하고 있을 뿐인 의회 권한도 없애고 싶다고 없앨 수는 없다. 행정명령을 통해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중요한 것은 ‘홍수 전략’에 압도되지 않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0일(현지시건) 취임식 직후 캐피털원 아레나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들어 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0일(현지시건) 취임식 직후 캐피털원 아레나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들어 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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