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개혁연구소 분석 보고서…“4명 중 1명꼴 독립성 검증 필요”

상당수 계열사·고위공직자 출신
친정권 ‘낙하산’은 로비 목적 선임
독립적 의견 내기 힘든 환경·경력
최근 금융회사들이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이사회를 ‘패싱’하는 내부통제 부실을 드러낸 가운데, 금융회사 사외이사 4명 중 1명꼴로 독립성 검증이 필요한 경력을 보유한 것으로 조사됐다.
6일 경제개혁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말 기준 108개 금융회사(공공기관, 금융그룹, 대규모기업집단 소속)에서 재직 중인 사외이사 456명 중 23.7%인 108명이 회사·정부 등으로부터 독립성 검증이 필요한 경력을 가진 것으로 확인됐다.
검증이 필요한 사외이사 수가 가장 많은 곳은 NH농협금융(12명·34.3%), 하나금융(10명·27%), 신한금융(8명·18.2%) 순이었다.
전체 인원 대비 검증 필요 비중이 높은 곳은 다우키움(53.8%·7명), 교보생명(50%·7명), KT(41.7%·5명) 순이었다.
금융회사의 경영활동을 견제·감시해야 할 이사회가 경영진의 찬성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지적은 최근까지 제기됐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3일 우리은행·KB국민은행·NH농협은행에 대한 정기검사 결과를 발표하며, 이사회가 ‘패싱’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KB국민은행은 인도네시아 자회사인 부코핀 은행에 대한 2000억원 규모의 유동성 지원을 이사회 보고 없이 먼저 결정했다. 송금 당일 아침에야 자금지원 필요성만 이사회에 보고했고, 리스크관리위원회는 사후적으로 열렸다.
우리금융은 동양·ABL생명보험 인수·합병(M&A)을 추진하면서 M&A 인허가 불발 시 계약금을 몰취하는 계약 조항 등을 이사회 공식석상에서 논의하지 않은 사실이 지적됐다.
이처럼 이사회가 유명무실화된 이유 중 하나는 다수의 사외이사들이 회사 경영진·지배주주나 정부와 유착돼 독립적인 의견을 내기 어려운 환경·경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개혁연구소 보고서에서도 금융회사 사외이사 456명 가운데 계열사 사외이사 출신 34명, 고위공직자 혹은 한국금융연구원 출신 31명, 친정권 정치활동 경력자 20명, 이해관계자(거래관계, 우호주주, 학연 등) 59명이 독립성을 갖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중복을 제외하면 108명에 달한다.
예컨대 지난해 8월 NH농협은행 사외이사로 취임한 장인환 전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실 행정관 등의 경우 보다 철저한 검증이 필요한 대상으로 지목됐다. 친정권 사외이사는 정치권의 ‘낙하산 인사’이거나 회사가 로비 활용 목적으로 선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거래관계에 있는 로펌·회계법인 출신들이 사외이사를 맡은 사례도 다수였다. 일례로 NH농협금융, 하나금융에서는 거래로펌인 김앤장법률사무소나 법무법인 세종 출신이 사외이사로 재임 중이다.
이승희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여전히 경영진 또는 지배주주에 우호적일 수 있는 사외이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나며, 특정 그룹에서 이러한 경향이 강하고 만성적”이라며 “회사와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고려하는 독립적 사외이사를 확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