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찾아온 바위가 몸에 꼭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면

김한솔 기자
[이미지로 여는 책]어느 날 찾아온 바위가 몸에 꼭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면

바위와 소녀
크리스틴 인트번 글 | 마르타 베르샤펠 그림
박서영·정원정 옮김
브.레드 | 78쪽 | 2만원

빵 반죽을 하던 소녀의 집에 거대한 바위가 배달된다. 소녀는 이런 바위를 주문한 적이 없지만, 배달원은 소녀의 것이 분명하다며 바위를 안겨주고 떠난다. 단단하고 거칠고 차갑고 거대한 돌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역시 버려야 한다. 하지만 바위는 어느샌가 소녀의 몸에 꼭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바위는 예고 없이 닥친 불행, 고통, 떨쳐지지 않는 짐이다. 자동차 세 대에 코끼리 일곱 마리를 얹은 만큼 무겁다. 깔려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무게지만, 바위는 소녀를 죽이진 않는다. 소녀는 바위를 버리러 간 골짜기에서 바위와 함께 밑바닥까지 떨어진다. 어쩌면 계속 바닥에 누워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바위를 이고지고 다니지 않아도 되니까. 하지만 소녀는 누군가 던져준 밧줄을 붙잡고, 수도 없이 미끌어지면서도 다시 위로 올라가길 택한다. 여전히 몸에 붙어 있는 바위와 함께.

[이미지로 여는 책]어느 날 찾아온 바위가 몸에 꼭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면

소녀의 손은 이제 밀가루 반죽 대신 힘껏 밧줄을 잡았던 상처로 가득하다. 다시 올라온 세상에서, 소녀는 비로소 다른 사람들의 바위를 본다. 바위를 배낭처럼 메고 다니는 사람, 동그랗고 작은 돌로 만들어 스케이트처럼 타고 다니는 사람, 개를 산책 시키듯 끌고 다니는 사람. 모두 저마다의 방법으로 돌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소녀는 문득 집에 두고 온 빵 반죽을 떠올리고 집으로 돌아간다.

<바위와 소녀>에는 ‘바위가 배달 온 이유’ ‘바위의 쓸모’가 끝까지 나오지 않는다. 많은 불행은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닥친다. 고통을 견디기 위해 지금 자신에게 닥친 불행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할 수는 있지만, 사실 불행은 가능하면 겪지 않으면 좋은 것일 뿐이다. 그럼 이 책에 희망은 없는 걸까. 그렇진 않다.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는 빵 반죽이 있다는 것, 상황은 달라졌지만 좋아하는 빵 만들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억지로 만들어낸 ‘불행의 이유나 쓸모’보다 훨씬 희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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