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합의’라는 유령이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을 떠돌고 있다. ‘여야 합의’는 한덕수 총리가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면서 국회선출 헌법재판관 임명을 보류하기 위해 꺼내든 논거다. 바로 이 건 때문에 한 총리는 탄핵소추됐다. 뒤이어 대통령을 대행하게 된 최상목 부총리도 마은혁 후보의 임명을 여야 합의가 확인될 때까지 유보하였다. 최 대행은 야당 추천 두 후보 가운데 명확한 근거도 없이 한 명이 여야 합의가 없다고 판별하는 기상천외한 신통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사실 여야 합의는 상생정치를 추구하는 의회민주주의의 중요한 기폭제다. 민주주의를 단순히 다수결 원칙으로만 운용하게 될 때 다수정파의 횡포를 막을 수 없으므로 소수파 존중의 절제를 발휘하는 장치가 여야 합의다.
그러나 여야 합의의 선한 영향력에도 원칙적 한계가 있다. 정치적 타협의 여지가 있는 사안에 국한되는 것이다. 여야 합의가 누군가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의무이행을 해태하고 직무를 유기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더구나 여야 합의는 한시적인 협상기간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 무한정 결정을 미루는 조건이 될 수 없다. 아무리 소수파 존중이 중요하더라도 다수결 원칙 또한 민주주의의 기본가치이기 때문이다.
여야 합의를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 임명의 조건으로 삼는 것도 예외일 수 없다. 이번의 경우 여야 합의로 구체적인 후보자까지 선정되었다. 그런데 황당한 비상계엄 선포로 내란이 시도된 후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소추까지 되면서 탄핵심판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여당인 국민의힘이 재판관 선출절차에 불참한 것이다.
애당초 여야 합의가 있었으니 이를 번복한 것을 문제 삼을지는 별론으로 하고 이번 사태 본질은 국회가 이미 헌법재판관을 선출하였다는 점이다. 여야 합의라는 사실적 조건이 국회 의결이라는 권한 행사를 부인할 논거가 될 수는 없다. 이미 선출된 후보자의 공무담임권은 물론 그 재판관이 참여하는 재판을 통해 기본권 보장의 혜택을 누릴 국민의 절차적 권리를 부인할 이유가 될 수도 없다. 무엇보다 탄핵에 6인 이상 재판관의 찬성을 필요로 하는 제도 때문에 재판관의 공석을 헌정질서 침탈자를 옹호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마는 불합리를 국민이 감내해야 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 결국 정치적 타협의 단계를 지나 이미 국회 의결이 있는 상황에서 여야 합의라는 조건을 내거는 것은 그 원칙적 한계를 넘은 것이다.
설령 여야 합의라는 조건을 걸 수 있다고 하더라도 벌써 임명 지체가 한 달을 훌쩍 넘겼다. 탄핵건으로 나라를 두 동강 내는 것도 불사하는 국민의힘과 합의를 요구할 수 있는 시간적 한계를 이미 도과한 것이다.
애당초 여야 합의는 의회민주주의를 위한 정치도덕적 조건에 불과하고 국가의 최고법인 헌법의 명령을 부인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 여야 간에 공방을 벌이는 것이야 정치의 다반사라고 치부하더라도 국회 내의 정쟁을 빌미로 국회의 선출권을 통째로 부정하는 것은 국회의 자율권을 부정하고 의회민주주의를 오히려 훼손하는 것이다.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 임명은 헌법상 대통령의 권한이자 의무다. 헌재는 위헌법률심판이나 탄핵심판처럼 헌정질서에 중요한 분쟁을 해결하는 국가권력이기 때문에 그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구성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헌법이 헌재의 구성에 삼권이 모두 관여하도록 한 배경이다. 따라서 헌법재판관 임명에 관한 대통령의 권한은 실질적 권한과 형식적 권한이 섞여 있고, 형식적 권한에 불과한 국회 선출 재판관 임명은 권한보다는 대통령의 의무에 무게 중심이 있다. 따라서 국민의 민주적 정당성을 직접 부여받은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국회 선출 재판관은 지체없이 임명하여 최고사법기관의 완전한 구성에 최선을 다할 헌법적 책무가 있다.
하물며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는 경우라면 이러한 헌법적 의무의 무게는 더욱 커진다. 임명직인 총리나 부총리의 경우 민주적 정당성이 취약할 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복귀나 새 대통령의 선출이 예정되어 있으므로 적극적 권한행사보다는 필수적 의무이행이나 현상유지에 집중하는 것이 헌법정신에 맞다. 국회가 이미 선출한 재판관을 임명하는 것이 바로 대행이 수행해야 할 대표적 직무다.
여야 합의가 작동할 수 있는 전제는 소멸되었고 시간적 한계도 도과되었다. 대행에겐 헌법적 의무의 이행만 남았다. 더 이상 여야 합의를 주장하는 것은 직무유기일 뿐이다. 헌법보다 상위에 있는 직무이행의 조건이란 있을 수 없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