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무부 정부과천청사. 김창길 기자
이른바 ‘가스라이팅’ 등 부당하게 심리 지배를 당하면서 자신에게 불리한 의사표시를 할 경우 이를 되돌릴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 민법 제정 이후 67년 동안 이어온 고정 법정이율제는 변동 이율제로 바뀔 전망이다.
법무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민법 개정안을 7일 입법 예고했다.
법무부는 민법에 ‘부당한 간섭에 의한 의사표시’ 조항을 신설키로 했다. 종교 지도자와 신도, 간병인과 환자 등 한쪽이 상대방에게 크게 의존하는 관계에서는 심리적으로 취약한 사람이 사기나 강박 같은 직접적인 영향력 행사가 없어도 자기에게 불리한 의사표시를 하는 문제가 있었다.
법무부는 영미권에서 통용되는 ‘부당위압’ 법리를 도입해 민법에도 ‘의사 형성에 부당한 간섭을 받아 행해진 의사표시는 취소할 수 있다’는 취지의 조항을 신설한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금리, 물가 등 경제 사정 변화에 따라 법정이율이 조정되는 변동이율제를 도입한다. 현행 민법은 ‘이자 있는 채권의 이율은 다른 법률의 규정이나 당사자의 약정이 없으면 연 5푼(5%)으로 한다’고 정하고 있다.
법정이율은 금전 채무 불이행의 손해배상액 산정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는데, 시장금리가 연 2∼3%에 머물 때도 연 5%로 고정 비율을 정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법무부는 경제 상황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고 채권자와 채무자의 불합리한 이익이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법정이율에 변동이율제를 적용키로 했다.
법무부는 계약 성립 이후 중대한 사정 변경을 이유로 계약의 해제·해지할 수 있도록 한 판례를 확장해 중대한 사정 변경이 있을 경우 계약을 수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민법에 명시키로 했다. 법무부가 이날 입법 예고한 민법 개정안에는 채무불이행 일반 규정의 ‘이행할 수 없게 된 때’를 ‘이행이 이뤄지지 않은 때’로 수정하는 등 기존 법리를 바꾸는 내용도 담겼다.
법무부는 다음 달 19일까지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한다. 법무부는 이번 개정을 시작으로 민법을 현실에 맞게 단계적으로 개정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법무부는 “국민 생활과 경제활동의 기본법인 민법이 1958년 제정된 이후 67년 동안 전면 개정 없이 거의 그대로 유지돼 변경된 사회·경제·문화적 현실과 글로벌 스탠더드를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다”며 “민법의 전면적 개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중대한 국가적 과제”라고 밝혔다.
법무부는 2023년 6월 양창수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민법개정위원회를 출범해 개정안을 마련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