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열렬한 고백의 언어 ‘붐은 온다’



완독

경향신문

공유하기

닫기

보기 설정

닫기

글자 크기

컬러 모드

컬러 모드

닫기

본문 요약

닫기
인공지능 기술로 자동 요약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문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내 뉴스플리에 저장

닫기

열렬한 고백의 언어 ‘붐은 온다’

  • 정유라
[언어의 업데이트]열렬한 고백의 언어 ‘붐은 온다’

‘잘될 거야’라는 말이 공허하게 들릴 때가 있다. 마음이 삐뚤어진 날이면 잘되는 게 도대체 뭔지도 모르겠고 그런 날이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다. 결국은 우리 모두 ‘다 잘될 거야’라는 믿음을 붙잡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말이 가진 낙천성과 대책 없음이 가끔씩 야속하다. 어쩌면 언어에도 배터리가 있어서 어떤 말이 필요 이상으로 많이 쓰이면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자주 낙담하고 수시로 절망을 경험하기 쉬운 요즘 같은 날은 더더욱 ‘다 잘될 거야’라는 말이 무력해 보인다.

그런데 여기, 아직 닳지 않은 말이 있다. “붐은 온다.” 이 문장에는 신선한 에너지가 있다. 이 말을 들으면 마음속 어딘가에서 희망이 뭉근하게 끓어오른다. ‘붐은 온다’는 전성기가 지났거나 아직 주목받지 못한 무언가가 영광을 누리길 바라는 강한 믿음에서 비롯된다. ‘밴드 붐은 온다’(밴드 음악을 지지하는 동명의 인스타 계정이 밴드 신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처럼, 비주류 장르의 진가를 더 많은 사람이 알아주길 바랄 때 사용한다. 작년부터 록 페스티벌을 찾는 사람들이 다시 늘어나자 록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록의 붐은 온다’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쳤고, 국제도서전의 인기부터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이어진 ‘문학 열풍’에 애서가들은 ‘독서의 붐은 온다’며 설레고 있다.

아직 오지 않은 영광의 시간을 염원하는 문장 ‘붐은 온다’. 응원 같기도 또 예언 같기도 한 이 말이 내게는 ‘문학은 앞으로 잘될 거야’라든가, ‘록은 언젠가 잘될 거야’라는 말보다 훨씬 더 진실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그건 ‘붐이 온다’라는 말이 그 대상에 대한 정확한 인지와 신뢰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조카의 꿈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건네는 ‘잘될 거야’ 같은 명절용 덕담이 아니다. 내가 응원하는 대상이 얼마나 사랑받아 마땅한지, 어찌나 매력적인지 한 톨의 의심도 없을 때만 가능한 믿음의 언어다. 그 매력을 나만 알 수는 없어서 세상을 향해 분출할 수밖에 없는 외침이다. 꽃이 필 가능성을 말하는 게 아니라, 너는 이미 가장 아름다운 꽃이며 그 향기에 사람들이 결국 매료될 것이라는 확신에 찬 고백. ‘붐은 온다’는 말랑한 격려가 아니라 열렬한 고백의 언어다.

누군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취향의 서랍 속에 넣어두고 혼자 꺼내 본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것이 제대로 가지를 펼칠 수 있도록 빛을 찾아준다. 둘 다 아름다운 사랑의 방식이지만 내가 닮고 싶은 것은 후자의 정서이며, 그 정서가 ‘붐은 온다’라는 말에 녹아 널리 퍼지고 있다. 재촉하지도 않고, 서두르지도 않으면서 담담하게 상대의 가능성을 믿어주는 이 용맹한 외침이 요즘 사랑 고백의 언어다. 진짜 사랑하는 대상을 향해서만 ‘붐은 온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

이제 이 고백의 언어를 나에게 하고 싶다. 잘될 거라는 외침이 막연하게 들릴 때 내게 필요한 건 미래가 아닌 지금의 나를 향한 확신이다. 중요한 건 ‘붐은 올 것이다’가 아니라 ‘붐은 온다’라는 현재형의 문장. 오지 않은 날을 기다리는 대신, 이미 지금까지 버텨온 나 자신을, 하루하루 쌓아온 지난 시간들의 가치를 믿어주는 것. 활짝 만개하는 것이 마땅한 스스로를 위해 ‘나의 붐은 온다’는 고백을 들려주고 싶다. 고백은 관계의 맥락을 바꾸니까, 이 고백 덕분에 나는 나와 더 잘 지낼 수도 있을 것이다.

■정유라

[언어의 업데이트]열렬한 고백의 언어 ‘붐은 온다’

2015년부터 빅데이터로 라이프스타일과 트렌드를 분석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 <넥스트밸류>(공저), <말의 트렌드>(2022)를 썼다.


  • AD
  • AD
  • AD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아니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구독 취소하기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보기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닫기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