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미국국제개발처

정유진 논설위원

“우리는 미 국민을 대신해 해외에 민주적 가치를 전파하고, 세계 평화와 번영을 증진한다.” 1961년 설립된 미국국제개발처(USAID) 선언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미국은 한국같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국가들이 빈곤에서 벗어나야 소련의 영향력 확대를 차단할 수 있고, 그것이 미 안보에 도움이 된다고 여겼다.

한국과학기술원과 한국개발연구원 모두 USAID 차관으로 설립됐다. 통신망, 상하수도 등 인프라를 깔 때마다 USAID 지원금이 투입됐다. USAID가 주거 여건 개선을 위해 제공한 차관으로 지은 ‘AID 아파트’는 나중에 금싸라기 땅이 됐다.

냉전은 종식됐지만 USAID의 사명은 끝나지 않았다. 기후위기로 기아는 오히려 확대됐고, 코로나19 팬데믹 위험이 등장했다. 시리아·미얀마·우크라이나 등 전쟁과 분쟁은 더 잦아졌다. 현재 USAID가 도움의 손길을 뻗치고 있는 나라는 전 세계 100여개국이다.

이러한 USAID가 존폐 위기에 놓였다. 연방정부 예산을 큰 폭으로 삭감해 세금을 아끼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미 정부효율부(DOGE) 수장인 일론 머스크의 표적이 된 것이다. 법원의 제동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와 머스크는 USAID를 “급진적 좌파의 소굴”이라 부르며, 모든 해외 원조를 동결했다.

2015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 시민 상당수는 해외 원조가 미 예산의 3분의 1을 차지한다고 오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실제로는 1%에 미치지 않는다. 국민총소득 기준으로 따지면 0.24% 수준인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하위권에 속한다.

후폭풍은 이미 시작됐다. 해외 원조 동결 후 미얀마 국경 난민촌 병원이 폐쇄되면서, 미얀마 난민이 사흘 만에 호흡곤란으로 숨졌다. 캄보디아·라오스 등지에서 예방접종 활동을 하는 NGO들은 운영 중단 위기에 놓였다.

이는 미국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바이러스는 국경 앞에서 멈추지 않는다. 미 국경 난민 위기도 순찰대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중남미 빈곤국의 경제적 불안정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구호가 중단되면, 결국 더 많은 난민 행렬이 세계 최대 경제대국인 미국으로 향하게 될 수밖에 없다.

미국 워싱턴DC에 위치한 국제개발처(USAID) 건물 앞에서 직원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워싱턴DC에 위치한 국제개발처(USAID) 건물 앞에서 직원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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