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영역의 양가성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기계적 중립’이라는 표현이 있다. 언론보도에 대해 비판적으로 평가할 때 주로 등장한다. 갈등하는 사안의 양쪽 입장을 비교해 절반씩 보도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는 요점을 전달할 때, 기계적 중립을 비판한다. 그런데 이 용어는 ‘그 간단한 중립조차 못 지키냐’는 요지로도 사용된다. 언론보도가 정파성과 경향성이 지나쳐 최소한의 균형잡기도 못하고 기울어져 보도하는 걸 비판하는 경우다.

기계적 중립이란 용어는 애매하다. 애초 저울을 뜻하는 영어에서 유래한 듯한데, 우리나라선 체구에 비해 과도한 짐을 나르는 노새처럼 남용된다. 그래서 ‘최소한 중립도 못 지키냐’는 비판이든, ‘중립을 지키느라 정작 중요한 일을 못했다’는 책망이든 정작 의도한 효과를 전달하는지 의문이다. 언제부턴가 기계적 중립이란 말을 사용한 어떤 비판도 그리 통렬하지 않다. 언론의 역할을 단순하고도 낡은 저울의 비유에 묶어 놓았다는 느낌만 준다.

요즘 ‘일탈영역’에 속한 사안이나 주장을 그대로 인용해서 보도하면 안 된다는 비판을 자주 접한다. 언론은 ‘합당한 논쟁영역’에 속한 쟁점은 양쪽 입장을 공정하게 대변하는 보도를 해야 하지만, 이 영역으로부터 일탈한 담론은 아예 무시하거나 별도로 취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견 그럴듯하나, 이 비판도 생각할수록 요점이 모호하다. 언론은 일탈적 주장을 어떻게 다르게 취급해야 하나. 일탈적 주장을 무시하는 게 과연 언론이 해야 할 일인가.

언론학자 대니얼 핼린이 1986년 출판한 학위논문 <검열없는 전쟁>에서 처음 일탈영역과 합당한 논쟁영역을 구분해 지칭했다. 그는 미국 언론이 베트남 전쟁을 어떻게 보도했는지 검토하면서 이 개념들을 활용했다. 미국의 1960년대 방송뉴스가 어떻게 ‘심각한 언론’이 되기 위해 분투했는지, 그러나 오래된 도덕주의적 이야기 전달자로서의 역할에서 왜 벗어나기 어려웠는지 사정을 해명했다. 그런데 이 개념들은 언론의 이념과 실천에 내재하는 규범들 간의 얽힘과 대립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지 언론보도의 충실성이나 규범성을 비판하기 위한 근거로 사용되진 않았다.

핼린의 <검열없는 전쟁>은 물론이고 매튜 프레스맨이 2018년 되살려 <인쇄중>에 인용해서 사용한 언론의 일탈영역에 대한 논의를 보면 이렇다. 한때 언론인들이 합의한 내용이라고 해서 다시는 논쟁의 대상이 안 되는 게 아니다. 언론이 일탈적인 주제라고 회피한다고 해서 뉴스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하나의 사건이 터졌을 때, 그와 관련한 합의된 주제, 논쟁적 사안, 그리고 일탈한 규범이 과연 무엇인지 끊임없이 저울질해서 그 경계를 그었다가 지웠다가 하는 게 언론이 하는 일이고 또 해야만 하는 일이다.

언론은 민주정을 지탱하는 핵심 원리를 부정하거나 민주적 절차로부터 의도적으로 일탈한 행위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런 일탈행위와 일탈자야말로 주의 깊은 기록, 확인, 그리고 배후 설명의 대상이 돼야 마땅하다. 그리고 정당한 비판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제발 우리 민주공화국의 안녕을 위협한 자들의 발언을 정확하게 기록해 놓자. 그리고 누구라도 차후에 재확인할 수 있도록 접근경로와 맥락정보까지 밝히자. 기록하고 밝혀서 시민의 판단을 돕는 게 언론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계적 중립만으로 곤란하다는 비판에 멈추면 안 된다. 한발 나아가 불편부당한 취재, 객관적 검증, 공정한 보도를 실현할 대안들을 제시해야 한다. 일탈영역에 속한 주장을 별도로 취급해야 한다는 주장은 양가적이다. 이 주장은 언론이 그 일탈의 정체가 무엇이고, 왜 문제적인지 해명해야 한다는 요청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언론은 이미 합의한 어떤 규범과 가치에 근거해서 왜 지금 이 사태를 일탈적이라 평가할 수 있는지 서로 견제하며 물어야 한다. 그리고 각자 합당한 이유를 제시할 수 있도록 서로 독려해야 한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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