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주의 유령이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 독일의 대안당과 프랑스의 국민전선이 급부상했으며,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재집권했고, 이탈리아에서도 극우 정당인 이탈리아형제들이 집권했다. 최근 극단주의의 특징은 주로 우파와 결합한다는 것이다. 극단주의는 좌파나 우파 혹은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 이념과도 결합할 수 있는 ‘이즘(ism)’의 하나이며, 이때 ‘이즘’은 이데올로기나 태도를 의미한다. 과거에는 이념 스펙트럼이 좌-우 혹은 진보-보수로 나뉘어 대립했다. 반권위주의 가치를 중시하는 탈물질주의도 신좌파나 신우파로 분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일차원 구도에 극단-온건이라는 새로운 축이 추가되어 현대 정치를 특징짓고 있다.
사전적 의미로 온건은 ‘생각이나 행동 따위가 사리에 맞고 건실함’을 뜻한다. 이를 민주주의와 연결하면, ‘민주주의 질서에 맞고 건실함’으로 풀이할 수 있다. 민주주의 질서 안에서 목적을 추구하는 태도나 이념이 온건주의다. 나치와 적군파라는 극우와 극좌가 발흥한 독일에선 극단과 급진을 구별하며 극단주의 정당을 금지한다. 온건주의(moderatism)의 대극에 위치하는 극단주의(extremism)는 민주주의 질서를 파괴하면서까지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다면, 급진주의(radicalism)는 급격한 변화를 추구하지만 민주주의 질서를 부정하지 않는다.
한국은 OECD 10위권 안팎의 경제력을 가졌을 뿐 아니라 노벨 문학상과 K팝 등 세계 문화를 주도하는 대열에 합류했다. 촛불집회와 응원봉 시위 등 정치문화도 세계 선봉에 서 있다. 이제는 정치적 극단주의도 비껴가지 않는다. 친위쿠데타를 통해 내란을 시도한 윤석열과 그를 옹호하는 국민의힘에 대한 지지가 사그라들지 않는 것도 이러한 현상과 관련된다.
극단주의는 민주적 방식으론 원하는 바를 달성할 수 없는 집단과 결합한다. 독재정권에 대항해 진보 진영이 극단주의 방식으로 저항한 것은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자리잡은 상황에서 극단주의를 선택하는 건 민주주의에 대한 반동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민주주의 질서 안에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 권력질서가 재편되는 데 대한 반작용이다. 새로운 사고가 보편화됨에 따라 지배집단이 위기의식을 느껴 극단적 방식으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젊은층이 탄핵집회에 많이 참석하는 건 놀랄 일이 아니다. 저항과 변혁의 시기엔 언제나 젊은 세대가 앞장서 왔다.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를 의식이 약하고 일탈적이라 보는 것도 예사로운 일이지만 ‘꼰대’적 시각에 불과하다. 2030세대는 2000년대 이후 태어나거나 청소년기를 보낸 세대다. 진보와 보수의 정권 교체를 겪었고 촛불집회 중심에 있었으며 촛불집회 이후를 살고 있는 세대다. 정권을 교체해도 달라지는 게 없는 현실에 실망하면서도 새로운 문화 창출에 앞장선 세대이기도 하다. 촛불집회라는 문화제 방식을 넘어 응원봉 집회라는 축제 방식의 평화적 시위를 발전시킨 것도 그중 하나다. 전통적 보수가 자유주의 보수로 교체되고 기성세대의 권위주의가 젊은 세대의 반권위주의 문화로 대체되는 시대다.
한국에서 극단주의는 이 변화에 저항해 전통적 보수와 결합했다. 2030세대의 사회적 행동이 남녀로 갈라지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탄핵 찬성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의 30%가량이 2030 여성이라고 한다. 반대로 탄핵 반대 집회에는 상대적으로 노년층이 많은 가운데 청년층에서는 남성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2000년대 이후 미투 운동 등을 통해 여성 인권이 향상되고 세대 갈등이 심화되면서 가부장적 권위주의 의식을 가진 남성과 기성세대가 의기의식을 느꼈고, 그 위기의식이 극단적 방식으로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는 안간힘으로 표출된 것이다. 서울서부지법 습격 같은 폭력 사태에 직접 가담하지 않더라도 친위쿠데타라는 내란을 옹호하는 것은 민주 질서를 부정하는 극단주의 사고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반동적 혹은 보수적 극단주의는 변화의 시기에 나타나는 과도기적 현상의 하나다. 문제는 이 극단주의가 대중성을 획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변화의 시기가 정치 경제적 위기와 맞물릴 때 나타난다. 극단주의 세력이 대중성을 얻어 권력을 장악하면 나치즘이나 파시즘 같은 극단적 권위주의 사회로 회귀하려 한다. 민주주의와 사회 진보가 심각한 후퇴를 경험할 수밖에 없게 된다. 뉴미디어를 통해 전파되는 가짜 뉴스와 확증 편향이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 극단을 거부하는 급진과 온건 민주 시민의 적극적 참여와 비판이 더욱 요구되는 시기다.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