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지역에서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급증한 2020년 2월20일 지역 최대 번화가인 동성로에 오가는 시민이 크게 줄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국내에서 코로나19 감염환자가 발생한 지 만 5년이 지났다. 팬데믹 공포가 휩쓸던 시기, 정치권과 지자체들은 앞다퉈 보건 지원 사업을 약속했지만 5년이 지난 지금 당시 논의됐던 사항들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확산세가 극심했던 대구지역에서는 전문병원 설립이나 공공의료 보완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감염병 대응력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대구시와 지역 의료계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현재 경북권 감염병전문병원 건립은 사업비 부족을 이유로 차질을 빚고 있다. 전문병원은 2021년 6월 칠곡경북대병원이 사업 주체로 선정돼 병원 부지 내에 들어서기로 예정돼 있다.
당시 질병관리청은 대구·인천·제주 등 입지를 놓고 고심한 뒤 대구를 최종 선정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홍역을 치른 대구에 감염병 대응을 전담할 병원이 꼭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당초 경북권 감염병전문병원은 국비 약 449억원 등 756억4100만원이 투입돼 2027년까지 음압 36병상(중환자실 6개 포함) 규모의 독립된 감염병동 시설 등을 갖추기로 예정돼 있었다.
이 곳에서는 감염병 환자 등에 대한 진단·검사 및 격리·치료는 물론 지역 의료기관 감염병 대응 전문인력에 대한 교육·훈련, 감염병 환자 배정 및 전원도 도맡기로 계획돼 있다.

대구지역에서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급증한 2020년 2월20일 대구의 중심 도로인 달구벌대로 청라언덕역 부근을 배달 오토바이가 지나고 있다. 대구시는 이날 ‘외출 자제령’을 내렸다. 연합뉴스
하지만 본격적인 공사를 앞두고 중간설계를 마친 결과, 공사비 단가가 크게 상승해 추가 사업비가 필요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에 사업은 약 1년 전쯤부터 ‘올스톱’ 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경북권 감염병전문병원의 완공 시기는 당초보다 2년 뒤인 2029년쯤으로 미뤄진 상황이다. 현재 질병관리청과 칠곡경북대병원 측은 총 사업비 규모를 줄이기 위해 협의 중이라고 대구시는 밝혔다. 경남이나 충청 등 다른 지역에 들어설 예정인 감염병전문병원 역시 실시설계 절차 등에 묶여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지역 의료계 관계자는 “추가적인 정부 지원이 없을 경우 사업주체인 병원이 상당한 적자를 무릅쓰고 사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어 중단됐다”면서 “협의도 쉽지 않은 것으로 전해져 감염병전문병원 개원이 언제쯤 이뤄질 지 기약없는 답답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과거 대구시가 감염병전문병원을 유치하기 위해 지방비 120억원을 투입하겠다는 지원계획을 발표했지만 후속 논의가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도 확인됐다.
권영진 전 대구시장은 2020년 5월 최종 사업자로 선정되는 병원에 최대 60억원, 또 지역의 다른 병원들에는 감염병 공동 대응 및 연구비 등으로 5년간 각 12억원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구시는 당시 언급됐던 계획이 현재로서는 검토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에 들어선 ‘코로나19 기억의 공간’에서 관람객들이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2023년 2월 개관한 이 곳은 대구에서 이뤄진 선도적인 방역 대책의 발자취를 다양한 형태로 되새기고 보전하기 위해 기획됐다. 대구시 제공
감염병 대응에 큰 힘을 실어줄 것으로 기대됐던 공공의료원의 추가 건립 무산도 아쉬운 대목이다. 코로나19 대유행 때 지역에서는 공공의료의 한계가 드러난 만큼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의 건강권 보장을 위해 사업이 절실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권영진 전 시장은 코로나19 확진자가 속출하던 2020년 3월, 2027년까지 공공의료원 1곳을 더 짓겠다고 발표했다. 대구시는 약 8개월 간 검토한 끝에 ‘제2 대구의료원’ 건립을 확정했다.
하지만 2022년 6월 홍준표 대구시장은 선거 과정에서 “추가 의료원 건립 문제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혔고 결국 무산됐다. 경남도지사 시절인 2013년 진주의료원을 폐원하고 채무를 없앴다는 점을 주요 성과로 내세운 홍 시장이 대구에서도 비슷한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당시 시장직 인수위는 기존 공공의료원의 기능을 강화하는 쪽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인수위는 대구지역의 의료비 충족률과 상급(종합)병원 접근성이 양호하다는 등의 통계를 제시했다.
실제 대구의료원의 시설과 의료진 보강 등은 이뤄져 왔다.

대구의료원 통합외래진료센터 조감도. 대구시 제공
이날 대구시에 따르면, 대구의료원은 올해 말까지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발생 시 음압병상으로 전환할 수 있는 격리병상을 기존 27개에서 97개로 늘리기 위한 절차를 마친다는 목표를 세웠다.
2022년부터는 사업비 약 990억원이 투입돼 필수중증진료 강화를 위한 ‘통합외래진료센터’ 건립 공사가 진행 중이다. 또 경북대병원과 협의해 파견 진료교수를 채용(16명)해 의료진 숫자를 42명까지 확보했다. 10개 과목에 대한 진료도 이뤄지고 있으며, 의료진의 순환근무도 이뤄지고 있다.
다만 대구시는 의정갈등 등의 영향으로 내년까지 의료진 확보 목표치인 68명 달성이 힘들 것으로 조심스럽게 예상한다. 시는 의료진 수를 늘리기 위해 최대한 노력할 계획이다.
이에 지역 시민단체와 의료계는 ‘불완전한 성과’로 진단한다.
은재식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는 “(기존 의료원에)시설을 추가로 짓는 등 외형적인 보완이 이뤄졌지만, 의정갈등의 영향으로 의료진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는 등 부족함이 있다”면서 “공공의료원과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시민들은 여전히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만큼 감염병 추가 유행 시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밖에 감염병 등에 대비하기 위해 지역 의료기관이 연대한 ‘메디시티대구협의회’도 사실상 해체 수순이라는 게 의료계의 전언이다. 이 협의회는 의료관광 활성화 등을 위해 꾸려졌지만, 코로나19 확산 초기 대구시와 함께 효과적으로 공동 대응함으로써 혼란을 최소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구시 공공보건의료지원단 관계자는 “홍 시장이 취임한 후 협의회에 지원되는 예산이 전액 삭감된 후 (협의회가)유명무실한 상태”라면서 “지역 의료기관의 정례화된 논의 체계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볼 수 있지만, 지금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기구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또 다른 감염병이 발생할 경우 코로나19 때처럼 지자체와 의료기관이 머리를 맞대는 신뢰가 구축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고 덧붙였다.
대구에서는 2020년 2월18일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신천지 교인과 요양병원 환자 등을 중심으로 집단감염 사례가 발생했다. 첫 확진자 발생 11일 만인 29일 741명을 기록하는 등 급속히 확산됐다.
지역에서는 감염병 확산 초기 병상과 의료인력이 부족해 의료시스템 붕괴 직전까지 이르렀다. 확진자 치료를 위한 의료인력과 병상, 시설 부족이 해소되지 않았다.
시민은 불안을 넘어 패닉 상태에 빠졌고 일상이 멈췄다. 대구시는 확진자가 급증하자 2월20일 “모든 시민 외출자제”를 요청하는 등 사실상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정부는 그해 3월15일 대구와 경북 경산·청도·봉화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자연재해가 아닌 감염병을 이유로 특별재난지역이 지정된 첫 사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