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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 터트리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김지원 기자

무엇을 보느냐만큼,‘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해

[인스피아]버블, 터트리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보고 싶은 것만 봐서 문제? 다른 시각 접하면 생각이 ‘균형적으로’ 바뀔 거란 건 착각
깊은 대화 없는 공존, 단순한 접촉은 자신의 선입견 강화 도구로 사용될 뿐
나와 다른 상대의 모순을 짚고 성내거나 설득하려 하기보다
미처 말하지 않는 진심에 닿도록 ‘제대로’ 귀 기울여야

최근 ‘필터버블’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필터버블(Filter Bubble)이란 유튜브, SNS 등에서 마치 동그란 거품에 갇힌 것처럼 내게 편하고 내가 좋아할 법한 영상, 글만 보게 되는 걸 뜻하는데요.

필터버블 속에 갇힌 사람들은 내게 불편한 것 대신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고요. 이 때문에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 사이 갈등의 골은 깊어진다고 합니다. 이에 지난달 24일엔 ‘유튜브 필터버블 개선’을 위한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습니다. 언론에서도 ‘필터버블의 현장’을 직접 탐색해보는 기사들이 속속 눈에 띕니다. 이런 관점들의 공통점이라면, 편향된 시각의 이유는 알고리즘 탓이며 우리가 좀 다양한 콘텐츠들을 접하게 된다면 생각이 자연히 ‘균형적으로’ 바뀔 것이라는 거죠.

하지만, 저는 곰곰 생각했습니다. 과연 단순히 다른 입장을 ‘접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걸까요? 어쩌면 ‘무엇을’ 보느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어떻게’ 보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요?

저는 이번 기회에 ‘필터버블’이라는 단어를 두고 해찰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필터버블이라고 말할 때 그것이 무엇을 뜻하고 그게 실제로 어떤 지점에서 문제가 되는지, 그리고 우리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지점에 주목해야 할지입니다.

조금 거창해 보이지만, 요는 ‘나를 화나게 만드는 사람들’ 얘길 어떻게 잘 들어볼 수 있을까 하는 거죠.

필터버블이라는 환상?

독자님은 인터넷, SNS에서 내 의견과 반대되거나, 화가 나고 모욕적으로 느껴지는 게시물을 보신 일이 있나요?

만약 있다면, 인터넷에서 그 게시물의 작성자와 의미 있는 토론을 하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공감하게 된 경험이 있으신가요? 그런 경우는 많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인터넷상에서는 우리가 진지하게 누군가를 대하는 일이 어렵기 때문이죠.

문제는, 의미 있는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단순히 다른 의견에 마주치게 하고 ‘땡’인 것은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겁니다.

[인스피아]버블, 터트리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호주의 미디어학자 마크 안드레예비치는 <미디어 알고리즘의 욕망>에서 오늘날 우리를 둘러싼 미디어, 자동화 알고리즘을 폭넓게 다루고 있는데요. 저는 그중에서도 책 속, 저자의 필터버블에 대한 참신한 주장에 주목해보았습니다.

우선 저자는 최근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사실 우리가 인터넷에서 어떤 콘텐츠를 접할 때 필터버블의 영향을 그렇게까지 크게 받지는 않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우리는 생각보다 일상적으로 다양한 맥락에서 나와 다른 의견들을 꽤 자주 접해왔다는 거죠. 예를 들면, 꼭 내가 나의 의견에 반대되는 신문이나 커뮤니티에서 무언가를 ‘직접 고의로’ 찾지 않더라도 누군가가 인용해서 반박하거나 논란이 된 내용에 대한 언론 보도를 통해 간접적으로 접하거나 다른 커뮤니티에서 퍼온 글을 읽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수동적으로만 정보를 받아들이는 건 아니고, 자기가 제대로 읽어볼 글은 본인이 직접 선택하곤 합니다.

오히려 반대 의견에 과잉 노출되는 경향도 있는데요. 일반적으로 상업플랫폼의 가장 큰 목적은 높은 참여도와 체류 시간인데, 우리가 통상 미담이나 100% 공감하는, 어디서 본 것 같은 기사보다는 분노나 적대하는 게시물에 훨씬 더 크게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커뮤니티, 언론 등은 의도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의견의 게시글을 가져와 분노를 유발하는 방식으로 수익성을 추구하기도 해왔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익숙하게 보는 포털 뉴스 댓글창을 떠올려보면, 단순히 같은 페이지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자연스럽게 이해와 공감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설령 사안에 대해 꽤 긴 논쟁(?)이 이어질지라도 말입니다.

게다가, 심지어 미국에선 과거 총기사건과 관련된 음모론을 가장 많이 퍼뜨린 주역이 아이러니하게도 음모론을 비판하는 사람들이었던 ‘웃픈’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인용해서 비판하는 것도 결과적으로는, 그 글을 몰랐던 사람들에게 노출하는 효과가 있으니까요. 미디어 입장에서는 일단 주목을 끄는 것이 돈이 되기 때문에, 가장 기이하고 극단적인 주장이 되레 힘을 얻게 되는 효과마저 있습니다.

문제는, 이와 같은 무차별적이고 단편적인 ‘나와 다른 의견’에 대한 ‘단순 접촉’이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는 건데요. 우리가 다른 의견을 아무리 마주하더라도 각자가 서로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악의로만 가득하다면, 아무런 의미 있는 소통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보다도 오히려 상대방의 모든 말은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강화하는 도구로 사용될 뿐이죠.

실은 이는 꼭 인터넷 플랫폼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오프라인에서도 단지 다른 배경, 계급, 인종의 사람들과 깊이 대화하지 않고 공존하는 것만으로는 편견이 오히려 강화될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같은 동네에 이주민들과 함께 살아도 전혀 섞이지 않고 단지 동네에서 스쳐 지나갈 뿐인 경우가 대표적일 텐데요. 그들의 입장을 입체적으로 고려할 만큼 진지하게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떤 모습을 보든 기존의 편견을 강화하는 도구로 쓴다는 거죠.

그럼에도 사람들은 통상 필터버블 문제의 해결책을 ‘더 많은 다른 입장을 접하는 것’으로 외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겁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해결책’은 실질적인 소통보다도 단지 더 많은 분노와 혐오를 조장해 결과적으로는 플랫폼의 수익만 높일 가능성이 큽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자극적인 혐오 게시글에 지나치게 에너지를 빼앗기는 것은, 소중한 우리의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에너지’를 빼앗아갑니다. 따라서 우리가 정말로 중요하게 주목해야 할 문제에 주목하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될 수도 있죠.

영국 저널리스트 올리버 버크먼은 2019년 한 칼럼에서 “통상 우리는 정치적 이슈에 관여하려는 이라면 으레 시사 뉴스를 샅샅이 섭렵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통념은 진실과 정반대일 가능성이 크다”며 관심을 기울여야 할 곳에 ‘제대로’ 기울이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제대로 보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니다

여기까지, 우리는 통상 필터버블에 대해 우리가 가져왔던 막연한 환상에 물음표를 던져보았습니다.

우리는 이미 생각보다 ‘단편적인 반대 의견’에 지나치게 많을 정도로 노출되어왔고, 이는 진정한 소통에 별 도움이 안 됩니다. 그렇다고 할 때 문제의 해결책이 ‘더 많은 반대 의견’에 노출되기일 리는 없습니다. 그보다는,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한 게 아닐까요?

상대방을 민폐덩어리, 계도하거나 쥐어박아야 할 샌드백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한 명의 사람으로서 ‘일단’ 존중하고, 서로의 선의를 충분히 확인하면서 머무르고 대화에 나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본인의 주관을 가진 채로도 다른 사람의 세계를 충분히 공감하고 세계를 넓힐 수 있습니다.

[인스피아]버블, 터트리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자기 땅의 이방인들>은 진보주의자인 감정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가 직접 보수주의자가 많은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가서 5년에 걸쳐 수십명의 사람들과 직접 대화를 나눈 결과를 담은 생생한 책인데요.

그는 원래 정치학자도 아니고, 딱히 보수적인 사람들과 본격적으로 대화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느 날 그는 자신이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노동문제 등 사회문제들을 풀기 위해선 자신과 반대되는 입장의 사람들과 연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고요. 단순히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대체 왜 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까?’ 하고요.

이에 그는 보수주의자 비중이 높고, 미국에서 복지 수준이 낮은 주(50개주 가운데 49위)이자 수십년에 걸친 가스 누출, 싱크홀, 폐수 유출 등으로 인해 최악의 환경 피해를 겪어온 루이지애나 지역으로 향하기로 결심했죠.

그가 지닌 단 한 가지 원칙은, 바로 ‘온전히 귀 기울이기’였습니다. 그들의 감정까지 천천히 듣고, 그들의 삶을 전체로 헤아릴 수 있도록 충분히 그들을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이었죠. 그는 5년에 걸쳐 티파티 핵심 지지자 40명 등 수많은 관계자를 인터뷰한 ‘4960쪽’의 기록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선별해 “그들을 쫓아다니면서 그 사람들이 태어나고, 학교와 교회에 다니고, 쇼핑을 하고, 재미있게 노는 곳을 보여달라”고 해 그들이 직접 일상에서 느끼는 사소한 감정과 즐거움, 슬픔 등을 오롯이 느껴보려 노력했습니다.

일단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며, 남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기 위한 엄청난 수고와 헌신, 번거로움에 새삼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는 통상 인터넷에서, 그리고 일상에서 누군가가 툭툭 내뱉는 말이나 행동들이 그 사람의 ‘진심’에서 나온 것이라고 간편히 생각하곤 하는데요. 사실 어떤 사람의 진심을 알기 위해서는, 그와 오랜 시간을 함께하고 또 그가 미처 말하지 않은 것, 숨기고 있는 것까지 알아낼 수 있어야 비로소 불완전한 시도라도 해볼 수 있습니다.

저자는 처음엔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몹시 어리둥절해지고 혼란스러워합니다. 이들의 이야기에서 반복적으로 ‘거대한 역설’을 찾아냈기 때문인데요. 이들은 석유 유출로 인해 아름다운 자연과 생활, 이웃, 가족들을 다 잃고서도 여전히 환경부 및 정부 축소를 주장하는 후보를 지지하고, 보험 영업을 하는 당찬 싱글맘은 자신이 유급휴직 복지의 대상이 될 수 있음에도 복지 축소를 주장하는 공화당에 투표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통상 좌파들이 생각하듯, 무언가를 미워하기만 하는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대부분 자신의 삶과 고향, 가족, 공동체를 사랑하고 전통을 지켜가려는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소중히 여겼던 것들은 수십년간 모두 손안에 든 모래알처럼 흘러내려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호수에서 고기를 잡으며 살아왔지만, 메탄가스 유출 및 싱크홀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거나 아프고 고기를 먹을 수도 없게 되고 친근한 이웃들은 떠나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공화당 정치인들은 환경영향평가에 반대하고, 정부의 지원을 줄이려 했죠.

가스회사의 영향으로 인해 수몰되어가는,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이 정든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지역에 사는 한 보수주의자 남성은 슬퍼하며 말합니다. “여기가 이웃들을 불러서 가재찜을 해 먹는 자리입니다. 이제 재닛하고 제리는 없어요. 우리는 여기를 정말 좋아했어요…”

그럼에도 저자는 ‘왜 대체 당신에게 도움도 안 되는 정당에 투표하느냐’며 그들의 모순을 짚고, 성을 내거나 설득하려고 하기보다는, 잠자코 이들의 삶으로 들어가 묵묵하게 이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대신 그들이 사랑하고, 슬퍼하고, 아끼는 것들을 충분히 이야기하게 하는 것을 통해 - 그 모순으로 가득 찬 이야기 뒤에 숨어 있는 이들의 마음을 가까스로 읽어냅니다. 그리고 그는 “그 사람들 각각에게는 (겉으로 그들이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다른 뭔가가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는데요. 그것은 바로 이들의 마음속 공통의 ‘내면의 이야기’였습니다.

그 이야기 안에서 그들은 자신의 삶을 명예롭게 인내하고, 카우보이처럼 멋지게 개척하는 꿈을 꾸었죠. 하지만 그들은 병들고 가난한 채 끝없이 늘어선 줄에 선 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끊임없이 자기 앞으로 새치기해오는 뻔뻔한 이들(소수자, 이주노동자…)을 뻔히 바라보면서요. 그렇게 이들은 자신을 ‘자기 땅의 이방인들’로 여겼던 거죠.

여기서 제가 주목하고 싶은 지점은, 이런 이야기를 그들이 자기 입으로 직접 말한 것이 아니라 - 저자가 이들과 밥을 먹고, 그저 시간을 보내고, 이들의 이야기를 사려 깊게 들으면서 이르게 된 통찰이라는 점입니다. 이어 저는 생각했죠. 만약 저자가 사람들의 말을 끊고 언성을 높이거나, 온라인·SNS에서 소리를 지르는 이들의 이야기만 바라봤으면 이런 생각에 이를 수 있었을까? 하고요.

혹실드가 이 책을 쓰기 위해 루이지애나 사람들을 만난 것은 2011~2015년의 일이었습니다만, 이 책의 후반부에서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 후보 유세에 참여한 이들의 감격 어린 목소리는 그의 통찰과 이어집니다.

“트럼프는 ‘감정에 호소하는 후보’다. (…) 자기하고 비슷한 다른 사람들과 손을 잡은 지금, 그 사람들은 희망과 기쁨과 고양감을 느낀다. ‘내 앞에 이런 남자가 있다니!’ 두 팔을 치켜들면서 놀라운 마음을 표현한 남자는 황홀경에 빠진 듯했다. 마치 마법에 걸린 듯. 이제 그 사람들은 자기 땅의 이방인이 아니었다”(<자기 땅의 이방인들> 중)

물론 저자가 이들의 의견이 옳다고 옹호한 것은 아닙니다. 사회적 약자들은 그들의 줄에서 새치기한 게 아닙니다. 여전히 이들의 삶에는 모순이 존재하고, 이들의 삶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해서는 어떠한 변화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과 입장이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묵묵하게 듣는 것을 통해, 그들이 미처 말하지 않은 본심을 읽어낼 수가 있었고요. 우리가 진짜로 서로 대화할 수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찾게 되었습니다.

저는 책을 덮으며 곰곰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방식으로 각자에게 말을 거는 글들을 우리가 평소에 얼마나 접할 수 있었나 하고요. 약간은 미련할 정도로(?) 비효율적이고, 서로에 대한 선의를 바탕에 둔 방식이요.

그리고 어째서 우리 사회는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그 모든 - 빠르게 반사적으로 쏘아붙여지는 악의와 혐오의 아픈 말들, 본심도 아닌 껍데기 같은 말들을 모조리 쓸어담는 방식으로만 한사코 ‘필터버블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걸까요?

맺음말

레터를 쓰면서 <자기 땅의 이방인들>을 읽을 때, 저는 묘하게도 책의 서두에 루이지애나의 한 옛 마을을 설명하는 아주 짧고 무심한 한 문장에 꽂혀 한동안 눈길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 대목이었습니다.

“마이크는 예전 조그만 밴더빌 마을에 관한 공상을 계속 이어간다. 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사라진 마을이다. 마이크가 전하는 회상에 따르면 4분의 3 정도가 흑인이고 4분의 1이 백인이었는데, 가까우면서도 불평등하게 어울려 살았다.”

앞서 이야기했습니다만, 사실 단순히 가깝게 어울려 지낸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상대방을 동등한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소통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도 그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뻔히 보면서도 보지 않을 수 있고, 들으면서도 듣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는, 필터버블 문제를 단순히 정보(무엇)에 접촉하느냐의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그보다는 어떻게가 더 중요합니다. 과연 우리는 오프라인에서든 온라인에서든 우리와 입장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얼마나 ‘제대로’ 귀를 기울여봤을까요?

마지막으로 간단하게 제 생각을 하나 덧붙여보자면 사실 저는 버블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버블이 있는 것이 문제고, 그것을 터트리는 것으로 모든 게 간단하게 해결될 리가 없습니다.

애초에 사람들은 어느 정도 자신의 버블 안에 들어 있을 수밖에 없고 그것만으로 문제가 되진 않습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온 배경과 접해온 환경에 따라 자신의 주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자신의 주관을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차단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한사코 다른 세계를 제대로 바라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겠죠. 이번 기회에 독자님들도 ‘무엇을’보다는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보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인스피아]버블, 터트리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이 글은 인문교양 뉴스레터 <인스피아>에 실린 내용을 수정한 것입니다. 더 많은 글을 보고 싶으시다면 오른쪽 QR코드를 촬영하거나, 포털에 ‘인스피아’를 검색해서 구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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