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영화제와 아카데미상을 휩쓴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기묘한 영화다. 얼핏 잔잔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조명하는 영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파괴와 살육을 직접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섬뜩함과 잔인함이 밀려오는 공포영화에 가깝다. 글레이저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담장을 기준으로 안팎이 대비되는 모습은 흡사 키아라 메잘라마의 어린이 동화 <안팎정원>을 연상시킨다. 일부 장면은 적외선 카메라로 찍어 현실을 잔혹동화처럼 보여주는 것도 인상 깊다.
홀로코스트가 주제인 이 영화는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배경으로, 수용소 소장이자 영화 속 주인공 루돌프 회스는 실존 인물이다. 영화는 가해자의 시선으로만 상황을 설명한다. 바로 그런 시각이 피해자의 처절함과 비통함을 극대화한다. 피해자 입장에서 보면 그는 악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평범한 가족을 둔 가장이다. 그의 개인 일상은 그야말로 평안하고, 담장 너머의 상황은 존재하지 않는 허상처럼 무관하다. 해나 아렌트가 지적한 ‘악의 평범성’이라는 의미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진정 사랑한 것은 식물과 동물이었다. 그는 정원의 라일락을 특히 아낀다. 가지를 꺾으면 ‘피를 흘리는’ 라일락을 애처로워하면서, 정작 가스실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시체가 불태워져도 한 치의 연민도 없다. 라일락의 꽃말은 공교롭게도 ‘사랑’과 ‘충성심’이다. 그는 말에 대한 깊은 애정을 표시하기도 했다. 아우슈비츠를 잠시 떠나기 전 ‘사랑해’라고 속삭였던 대상도 아내가 아니라 그가 타고 다니던 말이었다.
담장 안 낙원의 정원에 대한 지극한 사랑은 담장 너머 지옥의 가스실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수용자들의 고통과 죽음에 대한 동정이나 공감은 아예 없다. 오직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하고 효율적으로 수행하고자 골몰한 회스. 그는 자신의 판단 기준 없이 오직 ‘상명하복’이야말로 자신을 구원할 진리로 알았다. 그의 내적 사고에 악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 사고의 부재, 즉 ‘아무 생각 없음’이 악인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법을 배우거라. 모든 것을 비판 없이 절대적 사실로 받아들이지 마라.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는 상부의 지시를 의심 없이 충실히 믿고 따랐다는 것이다. (…) 무엇보다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거라.” 1947년 4월11일 그가 자신의 낙원인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교수형이 집행되기 바로 전, 아들에게 보낸 마지막 당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