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RI, 암세포 방출 휘발성유기화합물 분석
세계 최고 수준 정확도…“조기 진단 활용”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개발한 날숨을 통한 폐암 진단 장비의 사용 예시도. 날숨을 비닐 봉투에 담은 뒤 봉투 입구에 꽂은 ‘탄소 흡착 튜브 막대기’에 통과시켜 암세포에서 방출되는 휘발성유기화합물을 잡아낸다. 그 뒤 막대기를 전용 기기에 넣어 정밀 분석한다. ETRI 제공
국내 연구진이 사람의 날숨(내쉬는 공기)을 분석해 95% 정확도로 폐암 여부를 알아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검사 이후 결과가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20분에 불과하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날숨을 통해 폐 속 암세포에서 발생하는 여러 종류의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을 감지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11일 밝혔다. 해당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센서와 액추에이터 B’에 실렸다.
휘발성유기화합물은 상온에서 기체로 존재하는 유기물을 뜻하는데, 암세포에서도 방출된다. 연구진 기술의 핵심은 날숨에 섞인 휘발성유기화합물을 일정량 모아 자체 개발한 분석 장비에 넣는 것이다.
검사 절차는 간단하다. 검진자의 날숨을 일종의 비닐 봉투에 담는다. 그리고 이 봉투 입구에 길이 10㎝가량의 ‘탄소 흡착 튜브 막대기’를 연결해 날숨으로 배출된 공기를 통과시킨다. 이러면 공기에 섞인 물질이 막대기에 달라붙는다.
이 막대기를 휘발성유기화합물을 정밀 분석할 수 있는 20종의 ‘멀티모달 센서’가 담긴 특수 장비에 넣는다. 그 뒤 센서에서 나온 결과를 인공지능(AI) 딥러닝 알고리즘으로 분석해 폐암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날숨 채취부터 검사 완료까지는 20분이 걸린다.
ETRI 연구진은 공동 연구에 나선 분당서울대병원 전상훈 흉부외과 교수팀을 통해 폐암 환자 107명과 건강한 사람 74명의 날숨을 채취해 이번 기술의 성능을 시험했으며, 이를 통해 검사 정확도가 95%에 이른다는 점을 확인했다.
ETRI 연구진이 2019년에 도달한 정확도는 75%였는데, 추가 연구를 통해 수치를 95%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95% 정확도는 날숨을 이용한 폐암 확인 기술을 개발 중인 국내외 연구를 통틀어 최고 수준이라고 ETRI 연구진은 설명했다.
이번 기술의 큰 장점은 장비 값이 싸다는 것이다. 상용화하면 대당 1000만원 수준이 될 것으로 연구진은 예상했다. 현재 폐암 진단에 사용되는 CT 가격은 대당 수억원대 이상이다. 장비 가격이 낮으면 구매자가 많아지고, 폐암 예방과 조기 진단을 위해 더 자주 사용될 수 있다.
게다가 CT로 진단을 받으려면 검진자는 방사선에 노출돼야 하는데, 이번에 연구진이 개발한 기술은 그럴 염려가 없다.
연구진은 향후 1~4기에 이르는 암 진행 수준을 날숨으로 구별하는 방법과 폐암 외에 위암이나 대장암을 진단하는 방안도 추가 연구할 계획이다. 연구를 주도한 이대식 ETRI 진단치료기연구실 박사는 “이번 기술은 정부의 건강보험료 지출 절감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