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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인간의 공적 역할

입력 2025.02.12 20:16

수정 2025.02.1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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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일을 마치면 종종 광역버스를 타고 경기도 모처 집으로 향한다. 광화문이나 신촌이 회차 지점인 광역버스의 자리는 늘 넉넉하다. 대개의 사람들은 창가 좌석에 먼저 자리 잡고, 어떤 이들은 복도 좌석에 앉는다. 두어 정거장 지나 승차한 사람들이 앉을 자리를 찾을 때, 복도 좌석 사람들은 창가로 들어가거나 상대가 들어갈 수 있도록 일어난다. 하지만 아주 가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발생한다. 가방 등을 주섬주섬 챙기면서도 ‘여기도 내 자리인데 왜 비켜달라는 거야’라는 듯한 얼굴로 상대방을 쏘아보는 이가 없지 않다. 언젠가는 자는 척하며 나 몰라라 하는 사람도 있었다. 공공의 것을 개인의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 우리 주변에 여전히 많다.

절대왕정 시대를 살면서도 ‘공화국’이라는 이상사회를 꿈꾼 토머스 모어는 1516년 <유토피아>를 발표했는데,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는 그곳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네몰리우스라는 나라의 대사들이 유토피아를 방문했는데, 온갖 보석으로 치장한 그들을 보며 어린아이 하나가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 저 큰 멍청이 좀 보세요. 어린아이처럼 진주와 보석을 주렁주렁 달고 있어요.” 엄마가 이렇게 대꾸한다. “쉿, 조용히 해라. 저 사람은 아마 대사님이 데리고 온 어릿광대일 거야.”

유토피아에서는 금은을 어떻게 사용했을까. “노예들을 묶는 사슬이나 족쇄” 혹은 “요강과 평범한 그릇”의 주재료가 금은이었다. “다른 나라 같으면 금은을 잃어버릴 경우 마치 자기 내장을 빼준 것처럼 안타까워하겠지만” 유토피아 사람들은, 특히 국왕과 원로원 의원들은 이를 “동전 한 닢만큼도 아까워하지 않았다.” 이들은 금은을 “우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비하기 위해서 보관”할 뿐이었다.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을 엄격히 분리하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이다.

아일랜드 출신 배우 킬리언 머피가 주연한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20세기 후반까지 아일랜드 전역에서 벌어진, 일명 ‘막달레나 세탁소’ 사건을 고발한 작품이다. 막달레나 세탁소는 가톨릭 교회가 설립한 사회단체로 정부기관이나 군대, 호텔 등의 세탁물을 도맡아 처리했다.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젊은 여성으로 대부분 매춘부, 미혼모, 성폭행 피해자, 고아들이었다. 그들은 휴일도 없이 일했고, 심지어 무보수였다. 미혼모가 낳은 아이들은 돈을 받고 어디론가 입양 보냈다. 종교라는 공적 영역이, 공적 영역의 대명사인 정부의 묵인 아래 사적 개인들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했지만 근절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일랜드뿐 아니라 유럽 여러 나라와 미국 등에서도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했다.

역시 아일랜드 출신 작가인 클레어 키건의 동명소설을 영화로 만든 이 작품에서 주인공 빌 펄롱은 어떤 극적인 활약을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도망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한겨울에 석탄창고에 갇힌 소녀를 본 이후, 마음속에 피어난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질문 하나를 붙잡고 행동한다. 교회의 그늘 아래 살던 작은 동네, 딸들이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다니는 현실 등 모든 것이 그의 마음을 옥죄었지만 끝내 소녀를 집으로 데려옴으로써 절망에서 구원한다. 한 사적 인간이 공적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소설과 영화는 유감없이 보여준다. 세상이 온통 잿빛이다. 우리는 언제쯤 공적인 것을 사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을 보지 않을 수 있으며, 사적인 것을 공적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을 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질문은 깊고 실천은 좀처럼 먼 이야기를 다시 내게 던진다.

장동석 출판평론가

장동석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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