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대통령이 쥔 임명권·정권 눈치 보며 수사…‘비독립적’ 독립 기관 공수처



완독

경향신문

공유하기

닫기

보기 설정

닫기

글자 크기

컬러 모드

컬러 모드

닫기

본문 요약

닫기 인공지능 기술로 자동 요약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문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내 뉴스플리에 저장

닫기

대통령이 쥔 임명권·정권 눈치 보며 수사…‘비독립적’ 독립 기관 공수처

② 공수처, 이대로는 안 된다

검사 임명·연임 ‘대통령 몫’

윤석열, 채 상병건 외압 의혹받자
임명 지연시켜 수사 구성·연장 방해
처장 추천위에는 장관이 위원으로
선택적 임명, 정원 채워진 적 없어

인력·수사권, 법적 한계 뚜렷

임기 짧아 신분 불안…검사들 기피
기소권 없어 검찰에 사건 넘겨줘야
보완 수사 불분명해 처리 늘어져
숱한 법 개정 요청…국회서 ‘발목’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윤석열 대통령을 내란 우두머리(수괴) 혐의로 체포·구속한 뒤 수차례 조사를 시도하며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던 지난달 20일, 경기 과천시 공수처 한편에선 인사위원회가 열렸다. 공수처는 법에 정해진 검사 정원(25명)을 다 채워도 검찰 지청 한 곳 규모에 불과한데 이마저도 절반 가까운 11명이 비어 인력난이 심각하자 검사를 추가로 뽑기 위한 자리였다.

“어차피 8명 모두 채워 추천해도 대통령실에서 임명하지 않을 것 아닙니까?”

인사위에선 검사 공석 가운데 윤 대통령이 직무정지되기 전인 지난해 9월부터 임명하지 않고 있는 검사 3명을 제외한 8명을 모두 뽑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인사위는 이날 결국 4명만 선정했다. 경력 등을 감안했을 때 공수처 검사로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지원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인사위가 무리해서 8명을 채워 추천해도 언제 임명될지 기약이 없는 상황을 감안했다. 공수처법상 공수처 인사위는 검사를 추천만 할 뿐 임명 권한은 대통령에게 있다. 공수처 검사 임명 지연 사태는 윤 대통령이 탄핵소추되기 이전에도 이번 정부 내내 반복됐다. 공수처에선 “수사 역량 강화를 위해서는 인력난부터 해소하는 게 급선무인데 대통령이 임명권으로 공수처를 무력화하고 있다”는 불만이 나왔다.

‘고위공직자 부패범죄 전문 수사기관’이란 기치를 걸고 공수처가 출범한 지 4년이 지났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공수처가 내세울 만한 수사 성과는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다. 이는 현재 공수처 구성원들만의 탓은 아니다.

애초에 공수처는 정권의 입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에서 고위공직자 부패범죄라는 난도 높은 수사를 담당해야 했다. 다른 수사기관과의 관계도 불완전한 채로 태어났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급하게 수사권 조정을 추진한 탓에 누더기 같은 법령에 기반을 두고 설립됐기 때문이다.

권력 눈치 보게 설계

공수처는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수사기관을 표방하지만 앞에 예로 든 인사위 사례에서 보듯 정권의 영향을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다. 모든 검사의 임명, 그리고 3년마다 돌아오는 검사의 연임마저 대통령 재가를 받아야 한다. 정권이 맘만 먹으면 검사 인사를 무기로 공수처 수사를 방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윤 대통령이 자신이 정점으로 의심받는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수사 당시 공수처 검사 임명·연임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공수처는 수사팀 구성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공수처 검사들로선 자신들의 ‘목줄’을 쥔 수사 대상의 눈치를 보며 수사를 해야 하는 구조였다.

국회에 설치되는 공수처장 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 등이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한다. 이 또한 정권이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구조다. 지난해 공수처장 추천 과정에서 여권 성향 위원들이 후보로 윤 대통령을 공개 지지한 김태규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을 고집하면서 절차가 지연됐다. 윤 대통령은 추천위가 오동운 현 처장을 추천했음에도 상당 기간 특별한 이유 없이 임명하지 않아 공수처는 58일간 수장 공백 상태를 겪어야 했다.

‘인력 부족→성과 미흡→인력 이탈’

공수처가 수사해야 할 대상은 대통령, 국회의원 등 권력자들이고 대상 범죄는 난도가 높은데, 공수처는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로 만들어졌다. 공수처법상 공수처 정원은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에 불과하다. 2017년 법무·검찰개혁위원회가 권고한 정원(검사 50명, 수사관 70명)의 절반 수준이다. 당시 개혁위 권고안 수준으로도 고위공직자 부패범죄를 수사하기에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았는데, 그보다도 규모를 줄여 출범시켰다.

공수처는 이 모자란 정원마저도 출범 이후 제대로 채워본 적이 없다. 공수처법상 공수처 검사의 임기는 3년이고 대통령 재가를 거쳐 최대 3회 연임이 가능해 최장 12년간 일할 수 있다. 7년마다 적격심사만 통과하면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검찰청 검사보다 신분 안정성이 훨씬 떨어진다. 검찰과 달리 승진도 없다. 우수한 수사 역량을 갖춘 법조인을 유인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기대를 품고 공수처에 들어왔던 사람도 이내 실망해 조직을 떠나고 있다. 부족한 인력과 낮은 신분 안정성→우수 인력 유치 어려움→수사 성과 미흡→인력 이탈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설립 후 4년 동안 내세울 수사 실적이 한 건도 없다는 건 공수처로선 부끄러운 오명이다. 공수처가 ‘과욕’이란 비판에도 윤 대통령 내란죄 수사에 뛰어들어 검찰·경찰과 경쟁한 것은 이런 오명을 떨치고 존재가치를 입증하려는 목적이 컸다.

전직 공수처 검사 A씨는 “공수처에는 수사 실무를 아는 검사가 없다. 대부분 변호사 출신”이라며 “실무를 아는 사람을 현장에 배치하는 게 급선무”라고 했다. 검찰 간부 B씨는 “기본적인 실무를 배우지 않은 법조인이 곧바로 고난도 사건 수사에 투입되기는 어렵다”며 “적어도 교육 부분에서는 공수처 검사를 검찰에 파견해서라도 수사 실무를 배울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동운 처장도 수사인력·역량 부족 지적을 의식한 듯 지난해 5월 취임식에서 “공수처의 수사인력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외부기관의 인력 파견 등 모든 방안을 포함하는 수사기관 간 협력 방안을 검토할 시점”이라고 했다. 그러나 법령상 검경과의 수사 협력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 과정에서 공수처가 경찰과 공조수사본부를 구성했지만 향후에도 이런 구조가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다른 검찰 간부 C씨는 “공수처법상 공수처는 독립된 수사기관이고, 검찰청 검사를 파견해도 공수처법상 정원에 포함돼 협력이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을 개정해 정원을 늘리고 검사 정년을 보장해 수사력을 보강할 수 있게 해달라고 국회에 수차례 요청했다. 관련 법안들도 발의됐지만 번번이 통과가 무산됐다. 공수처 고위직을 지낸 D씨는 “특히 국민의힘 의원들은 공수처에 뭐라도 해주면 ‘용산’(대통령실)의 역린을 건드린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회의원들은 공수처 출범 무렵부터 조직이 갖춰지면 자신들을 겨누는 칼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공수처를 시작부터 무용하게 만들어놓고 방치했다”고 비판했다.

윤석열 수사에서 노출된 공수처법 허점들

공수처는 윤 대통령을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수사했지만 직접 기소하지 못하고 검찰에 공소제기 요구 형식으로 사건을 넘겼다. 공수처 검사는 검찰청 검사, 판사, 경무관 이상 경찰관을 제외한 고위공직자에 대해선 수사권만 있고 기소권은 없기 때문이다. 공수처법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주장한 ‘수사·기소 분리’ 원칙이 강하게 작용해 만들어졌다.

공수처법은 법적 공백에 대해선 ‘검찰청법·형사소송법을 준용한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정작 검찰청법·형사소송법에는 공수처의 역할과 권한에 대한 별다른 규정이 없다. 검찰은 공수처 검사에게 기소권이 없는 범죄에 대해선 ‘사법경찰관’이라 영장청구권이 없다고 주장한다.

윤 대통령 사건에선 공수처가 피의자를 구속해 검찰에 넘길 경우 전체 구속기간이 20일인지, 30일인지, 40일인지가 논란이었다. 형사소송법상 검사는 최대 20일 구속할 수 있고, 사법경찰관은 최대 10일 구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수처와 검찰은 구속기간 20일을 각자 10일씩 사용하기로 협의했다.

그런데 공수처법의 허점 때문에 ‘사고’가 터졌다. 지난달 검찰이 공수처로부터 윤 대통령을 넘겨받아 구속기간 연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이 ‘공수처법에 검찰의 보완수사 규정이 없다’며 불허한 것이다. 법원은 “공수처 검사가 공소제기 요구서를 붙여 보낸 사건에서 검찰청 검사가 수사를 계속할 상당할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공수처가 공소제기를 요구한 사건은 검찰이 구속 연장과 같은 적극적 보완수사를 하지 말고 기소 여부만 판단하라는 취지다. 결국 검찰은 윤 대통령을 조사 없이 기소해야 했다.

공수처가 윤 대통령을 수사할 수 있었던 건 ‘이첩요청권’을 발동해 검경으로부터 사건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공수처법 24조에 따르면 공수처장이 사건 이첩을 요구하는 경우 다른 수사기관은 응해야 한다. 공수처법 논의 당시 ‘공수처장이 자의적 판단으로 사실상 검경에 수사지휘를 한다’는 비판이 강했던 조항이다. 공수처는 윤 대통령을, 검찰은 군 지휘부를, 경찰은 경찰 지휘부를 수사하면서 일부 피의자·참고인이 세 수사기관에 모두 출석해 조사받는 ‘중복 수사’ 상황도 생겼다. 윤 대통령은 ‘중복 수사’를 핑계로 조사 출석을 거부하기도 했다. 차장검사 E씨는 “12·3 비상계엄 수사는 수사기관들이 서로 수사를 떠미는 것과 반대로 서로 수사하겠다고 나설 때의 문제점을 보여줬다”며 “공수처의 이첩요청권을 비롯한 강제 조항들은 다른 기관에서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을 경우에 한해 제한적으로 행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수처의 수사·기소권이 분리된 데다 검찰의 보완수사가 가능한지 불분명해 사건 수사가 한없이 늘어지는 현상도 일어났다. 공수처는 ‘감사원 3급 간부 뇌물수수 의혹’ 사건을 수사해 2023년 11월 검찰에 공소제기를 요구했다. 당시 검찰이 ‘보완수사가 필요하다’며 사건을 돌려보냈고, 공수처가 접수를 거부하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지난해 11월 검찰이 직접 보완수사를 하기로 결정했지만 최근에는 사건을 다시 공수처로 보낼지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의 윤 대통령 구속기간 연장 불허 취지를 보면 검찰의 보완수사가 불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위공직자 부패범죄를 척결하겠다며 공수처를 만들었는데, 오히려 법률 공백으로 비리 공직자 처벌이 무산·지연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공수처 검사를 지낸 F씨는 “제기된 문제들 모두 공수처 1기 때부터 언급됐지만 국회도 공수처의 권한을 늘려주지 않았고, 검찰도 논의에 협조적이지 않았다”며 “방치된 문제들이 이번 수사 과정에서 한번에 터져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아니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구독 취소하기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보기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닫기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