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16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금융통화위원회 기준금리 결정에 관한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국제 금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상황에서 한국은행은 금을 사들이는데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급격하게 오른 금값에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안전성·유동성·수익성을 추구하는 외환보유액 운용 기조 아래 금 매입을 서두르지 않고 있다.
13일 한은 경제통계시스템을 보면 한은은 지난 2013년 20t의 금을 추가로 사들인 뒤 12년째 금 보유량을 104.4t으로 유지해왔다. 한은이 보유한 금은 매입당시 가격 기준으로 47억9000만 달러로 전체 외환보유액의 1.2% 수준이다.
한은의 행보는 세계 중앙은행들의 움직임과도 다소 동떨어져 있다. 세계금위원회(WGC)는 “각국 중앙은행이 3년 연속으로 총 1000t이 넘는 금을 매입했다”면서 “지난해 연간 투자액은 1186t으로 4년 만에 최고였고, 4분기에만 333t에 달했다”고 했다. 이에 한은의 금 보유량 순위는 2023년 말 세계 32위에서 지난해 말 38위로 떨어졌다. WGC가 지난해 68개국 중앙은행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69%가 향후 5년 안에 금 비중을 늘리겠다고 답했다.

금값이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는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한국금거래소 지점에서 직원이 금 제품을 정리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한은은 왜 금을 사들이지 않을까.
그 이유로 우선 낮은 유동성이 꼽힌다. 금은 주식이나 채권에 비해 유동성이 낮아 현금화가 어렵다는 것이다. 상시 현금화가 필요한 외환보유액의 성격과 맞지 않다. 요즘처럼 외환보유액이 4000억달러 밑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신중할 수 밖에 없다.
높은 변동성도 약점이다. 안전자산인 금은 가격이 꾸준히 오르는 것 같아도 단기적으로는 급등락한 경우가 적지 않다. 한은은 과거 금값 폭락을 경험한 적도 있다.
한은은 2011~2013년 금을 총 90t 사들인 바 있다. 2000년대 초 온스당 200달러대였던 국제 금 가격은 2011년 1900달러에 육박할 만큼 치솟아 매입 욕구가 높아졌던 탓이다. 그런데 2015년 금값이 1천달러대로 곤두박질 치면서 금값의 높은 변동성을 경계하는 기류가 생겼다.
수익률이 주식에 비해 높다고 볼 수 만도 없다. 2010년 말기준 영국 런던귀금속거래소의 금 현물 가격은 1온스당 1421달러로 지난해말(2625달러) 기준 수익률은 84.6%다. 같은 기간 미국 S&P500지수는 367.7% 올랐다. 여기에 금은 이자나 배당이 없다는 점, 보관 비용도 발생한다는 점 등도 고려해야 한다.
최근 금 매입을 늘리는 국가들도 주로 중국·러시아·튀르키예 등 달러화 의존도를 낮추려는 국가거나 전쟁 등으로 안전자산 수요가 커진 국가들이 많다. 우리나라와는 다소 상황이 다르다.
한국은행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금 추가 매입을 고려한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