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남북회담 문서 2266쪽 공개
북한 “남한, 콘크리트 장벽 철거해야”
“민족 분열과 대결의 상징…민족 수치”
‘총리회담’ 명칭도 “나라 사이 회담 인상”

북한군이 군사분계선(MDL) 북쪽 2km 지점에 대전차 방벽으로 추정되는 구조물을 세우고 있다며 지난해 6월18일 합동참모본부가 관련 사진을 공개했다. 합동참모본부 제공
북한이 과거 남북회담에서 남한이 설치한 대전차 방어용 장애물을 ‘콘크리트 장벽’으로 부르며 철거를 요구한 내용이 담긴 사료집이 13일 공개됐다. 북한은 또 남북합의서 서명란에 국호(나라 이름)를 사용하지 말자고 제안했다. 북한이 최근 남북 ‘두 국가론’을 주장하면서 군사분계선(MDL) 일대에 방벽을 세우는 등 물리적 단절 조치를 실행한 모습과 대비된다.
통일부는 이날 1984년 9월~1990년 7월 진행된 정치·경제·체육 분야 남북회담 관련 문서(2266쪽)를 공개했다. 남북회담 사료집 공개는 2022년 시작돼 이번이 여섯번째다. 사료집에는 남북이 고위급회담 성사를 위해 진행한 8차례 예비회담(1989년 2월~1990년 7월)의 진행 과정과 회의록이 포함됐다.
북한은 당시 예비회담 과정에서 남측이 1979년 MDL 일대에 설치한 대전차 방어용 장애물을 ‘콘크리트 장벽’이라고 부르며 철거를 촉구했다. 북한은 1990년 1월 판문점 통일각에서 진행한 6차 예비회담에서 “나라의 한복판을 가로지른 콘크리트 장벽은 민족 분열과 북남 대결의 상징”이라며 “세계 어느 나라 국경에서조차도 찾아볼 수 없는 인공적인 차단물”이라고 밝혔다. 북측은 콘크리트 장벽을 두고 “민족의 수치”, “미국 사람들의 두 개 조선 정책의 산물”이라고도 했다. 북측은 그러면서 이를 허물고 “자유 내왕과 전면 개방을 실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남측은 “귀측의 탱크나 기계화 부대들이 침투하고 공격할 것을 대비해 군사적 목적”으로 설치한 대전차 방어용 장애물이라고 반박했다.
남북은 본회담 명칭을 두고도 대립했다. 남측은 1989년 2월 1차 예비회담 때부터 본회담을 ‘남북총리회담’이나 ‘남북고위당국자회담’으로 명명할 것을 제안했다. 북측은 이에 반대하며 ‘고위급 정치·군사회담’으로 부르자고 했다. 북측은 남측의 제안을 두고 “회담의 성격과 특성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마치 나라와 나라 사이 회담과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앞서 1985년 11월 제5차 남북경제회담 합의서의 서명란에 국호를 사용하지 말자고도 주장했다. “나라 사이에 채택하는 합의서가 아니라, 한 나라 안에서 같은 민족끼리 경제협력과 교류를 실현하기 위해 채택하는 합의 문건”이기 때문이라는 논리를 들었다. 서명란에 ‘남측대표단’, ‘북측대표단’이라고 쓰면 된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이 최근 남한을 향해 보인 행보와는 다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23년 12월 말 남북을 ‘동족’이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선언하고 ‘통일 지우기’에 나섰다. 남북을 잇던 도로·철도를 폭파했고, MDL 인근 곳곳에 대전차 장애물로 추정되는 방벽을 설치했다.
남북은 1990년 7월 제7차·8차 예비회담에서 협의가 급진전하면서 고위급회담 개최에 합의했다. 이후 1990년 7월부터 1992년 9월까지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8차례 걸쳐 고위급회담이 이뤄졌다. 그 결과 양측 총리가 서명한 남북기본합의서와 그 부속합의서를 채택 및 발효했다. 이 합의서는 남북을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 관계’로 규정한 최초의 문서다. 남북이 상대방에 대한 비방·중상, 상대방을 파괴·전복하려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통일을 위한 기본 틀을 제시한 합의서로 평가받는다.
통일부가 이번에 공개한 사료집에는 5차례 남북경제회담(1984년 11월~1985년 11월), 2차례 남북국회회담 예비접촉(1985년 7~9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중재한 3차례 ‘로잔’ 남북체육회담(1985년 10월~1986년 6월) 등의 진행 과정과 회의록 등도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