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잠자고 있는 코인 60억 ‘기지개’
가상자산 ETF 도입은 금지

지난해 11월 서울 서초구 빗썸라운지 강남점에 가상화폐 시세가 표시돼 있다. 성동훈 기자
금융당국이 가상자산 시장의 문턱을 낮춰 법인 투자를 점진적으로 허용한다. 오는 2분기부터 대학교 등 비영리법인은 기부받은 가상자산을 팔아 현금화할 수 있고, 하반기에는 금융회사를 제외한 전문투자법인의 가상자산 매매까지 가능해진다. 다만 가상자산 상장지수펀드(ETF)는 여전히 금지된다. 가상자산 업계는 국내 시장이 지각변동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가상자산 ETF가 가로막혀 한계가 있다는 아쉬움이 동시에 나왔다.
하반기부터 전문투자자의 가상자산 투자 시범 허용
금융위원회는 13일 제3차 가상자산위원회를 열고 법인의 가상자산 시장 참여를 점진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금융위는 2분기부터 지정기부금단체, 대학교 등 비영리법인이 법인 실명계좌로 가상자산을 매도하는 것을 허용하기로 했다. 대학교 등이 기존에 기부받은 가상자산을 현금화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가상자산거래소도 수수료로 받은 가상자산을 현금화해 인건비, 세금 납부 등 경상비에 사용하는 것 역시 상반기에 허용된다.
지금까지 은행은 자금 세탁 위험 등을 우려한 금융 당국의 행정지도에 따라 법인 실명 계좌를 발급하지 않았다. 이에 서울대 등 일부 대학은 기부받은 가상자산 60억원 가량(지난해 말 기준)을 현금화하지 못하고 있었다.
올해 하반기부터는 전문투자자로 등록한 상장사·전문투자법인 중 잔고 100억원 이상을 보유한 3500여개사의 가상자산 매매 실명계좌도 시범적으로 허용된다. 법인과 전문투자자들의 투자·재무목적의 사고 팔기가 모두 가능해진 것이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법인 위주로 가상자산 생태계가 조성된 해외사례, 국내 기업의 블록체인 신사업 수요 증가, 글로벌 규율 정합성 제고 등 측면에서 법인의 시장참여 허용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면서 “리스크 최소화를 위해 단계적·점진적 허용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금융사는 아직…가상자산 ETF 도입도 함께 미뤄져

다만 금융회사의 가상자산 직접 매매·보유 허용은 시간을 두고 검토하기로 했다. 가상자산 위험이 금융시스템으로 전이될 우려가 있고, 미국 등 해외에서도 이를 제한하는 추세인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가상자산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국내 도입도 함께 미뤄지게 됐다. 금융위는 올해 하반기 마련하기로 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2단계 안건이 어느정도 논의된 후에야 ETF 도입을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금융위는 보완조치도 병행한다. 가상자산거래소는 사업자 공동 매각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매도 가능한 가상자산 종류·물량 등을 제한해야 하고, 전문투자자의 최종 실명계좌 발급 여부는 매매 가이드라인과 은행·거래소의 세부심사를 통해 결정된다.
업계 “법인 참여가 시장에 활력 줄 것” vs. “금융사 없인 글쎄?”
가상자산 업계는 일단 반기는 분위기다. 기관 투자자 등 법인의 가상자산 투자가 가능해지면 국내 시장이 한층 활성화되고, 업비트·빗썸 등 일부 거래소로 치중된 쏠림 현상도 해소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가상자산업계 관계자는 “국내 업계가 10년 넘게 개인 영업에만 집중해온 만큼, 법인계좌 영업이 시장에 활력을 줄 ‘새 먹거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현물 ETF 도입 등이 좌절된 것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금융사의 직접 투자가 막힌 상태로는 가상자산시장 활성화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