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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한기택

입력 2025.02.13 21:28

수정 2025.02.13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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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의 일생의 일상]판사 한기택

소주 공장 다니면서 소주 많이 마신다는 말처럼 싱겁기도 하겠지만, 출판에 몸담고 책으로 지은 인연이 제법 많다. 궁리에서 책을 낸 정신과 의사의 주선으로 영화감독, 배우, 의사 등과 어울린 후끈한 자리. 자유로운 정신들답게 화제는 사방으로 흘렀다. 문득 술이 제법 불콰해진 영화감독이 이런 말을 했다. 고교 시절, 방송반이었는데, 전설로 자리잡은 선배님이 있다면서, 목숨 걸고 재판했다는 판사님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 당시 이명박 치하에서 광화문의 어이없는 이른바 ‘명박산성’을 성토하다 나온 한 자락이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몇해 전 책을 내면서 알게 된 어떤 분의 삶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겠는가. 이런 자리에서 우리 저자의 저 이야기를 듣다니, 내심 출판의 한 꼭지를 따는 듯한 으쓱한 기분으로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감독님, 영동고등학교 나오셨죠!

그랬다. 가족과 여름휴가 갔다가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한기택 판사. 그의 빈자리를 견딜 수 없던 이들이 모인 ‘한기택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일주기를 맞이하여 꾸민 추모집 <판사 한기택>을 궁리출판에서 펴낸 것이다. 나는 법에 관한 한 괄호 밖이었지만 추도식에 참석해 각근하게 두 번 절하고, 유족들이 마련한 맛있는 점심도 배불리 얻어먹었다. 그리고 또 생업에 종사했다.

왜 사람은 자신의 시대를 첨단에 올려놓기를 좋아하는가. 그래서 이렇게 조금 쌓았다가 요렇게 폭삭 무너지며 제자리걸음인가. 또다시 어지러운 정치, 무너진 법치. 그래서 한기택 판사를 더욱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판사 한기택>을 찾는가 보다. 절판된 지 오래된 책을 살리라는 제안도 있었지만 나는 이미 잇속부터 먼저 따지는 상업성에 깊이 물든 자.

며칠 전 한기택 판사 부인의 부음을 건너건너 들었다. 사람은 마흔부터 보따리 쌀 준비를 해야 한다고도 하지만 모든 이름 옆에는 괴나리봇짐이 항상 따라붙는다. 살아서는 나이, 죽어서는 생몰년. “20년간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서로 사랑했다”는 서로의 사랑은 지극해서 한기택(1959~2005)은 어쩌면 20년이나 부인을 기다렸다가 이제야 자신의 괄호를 온전히 닫으시겠구나. 늦은 밤 장례식장을 빠져나올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두 분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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