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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역겨운 농담 같다

더불어민주당 전신인 열린우리당에서 국민의힘 전신 한나라당으로 출입처를 옮겼을 때의 경험담이다. 출입 초반 한나라당을 주어로 한 정국 전망 기사들이 종종 빗나갔다. 큰일이라도 날 듯 앞서나간 기사를 썼지만, 의원들은 조용했다. ‘백팔번뇌’ 말이 나올 정도로 다이내믹했던 열린우리당에서 체득한 경험을 적용한 결과였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지도부 책임론 등으로 들썩였던 열린우리당과 달리 한나라당 의원들의 엉덩이는 무거웠다. 모험을 싫어했고, 웬만한 분란에는 꼼짝도 안 했다.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은 죽을 때도 줄 서서 죽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들은 습성을 바꿀 이유가 없었다. 호남에 비해 의석수가 훨씬 많은 영남을 기반으로 했고, 군사정권·독재정권의 영향력에 기대 편하게 정치를 했다. 야당이 꿈틀거리면 지역감정을 자극하거나, 색깔론 올가미를 씌우면 그만이었다. 법조인·고위관료 등 기득권층이 다수를 점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부와 권력을 누릴 수 있는데, 판을 흔들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들에게는 풍찬노숙 경험이 없었고, 할 필요도 없었다. 침묵과 대세추종만 하면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국민의힘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모난 돌이 정 맞는 정당으로 남을 것이다.

더구나 이들은 ‘재선이 최고의 선’인 국회의원이다. 다음 선거에 당 공천을 받기 위해선 어떤 처신을 하는 것이 좋을지 지켜봤고, ‘나대면 죽는다’는 교훈도 얻었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배신자 프레임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게 된 유승민 전 의원과 김무성 전 의원도 이들에게는 반면교사가 됐을 것이다. 대신 이들은 실력자가 등장하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줄을 섰다. 설사 틀린 말과 행동을 하더라도, 쓴소리보다 비위를 맞췄다. 잘 버티면 한자리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들을 고려하면 국민의힘 의원들이 내란 수괴 윤석열을 떠받드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자생력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이들은 ‘윤석열이 오죽하면 계엄했겠느냐’는 아스팔트 난동 지지층 도움이라도 구하기로 했다. 철창 뒤 윤석열이지만, 그 뒤에 줄 서는 게 이익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일부 의원은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잡았고, 어떤 의원들은 구치소를 방문했으며, 당을 수습해야 할 비상대책위원장은 윤석열의 부정선거 망상에 편승해 사전투표 폐지를 주장했다. 복지부동과 출세가 유일한 정치철학이니, 헌정질서를 망가뜨리려 했던 윤석열의 어마어마한 과오 따위는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이재명은 안 된다’고 하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사법리스크는 논외로 치자. 이들은 ‘국가 미래를 위해 이재명은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내란도 옹호하는 이들이 나라 걱정을 하는 것은 소가 웃을 일이다. 자칫 이재명이 집권할 경우 윤석열 정권이 가했던 정치적 보복을 되돌려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가장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탄핵 국면에서 국민의힘이 벌이는 이해 못할 행태들은 이기적인 동기에서 비롯됐다고 봐야 한다. 탄핵 국면 내내 국민의힘은 ‘국민의힘했다.’ 국민의힘은 이번에도 질서정연하게 줄 섰다.

주정과 국정을 구분하지 못하고 내란까지 획책한 광군, 나라와 국민보다 자신들의 정치적 안위가 우선인 여당이 이 엄중한 시기에 국정을 운영했다니 모골이 송연하다. 이러고도 나라가 안 망한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할리우드 영화 <겟 아웃>의 “인생은 때론 역겨운 농담 같다”는 대사가 떠올랐다. 인생사 아이러니한 상황들에 대한 절묘한 표현이라 생각했는데, 여권 상황과 딱 들어맞는다. 피 토하는 심정으로 계엄한다더니, 피 섞인 가래침도 못 뱉은 채 ‘호수 위 달 그림자’ 운운하는 윤석열, 이런 자를 순교자로 옹호하는 여당. 저질 코미디 같은 집권세력의 행태를 보며 쓴웃음과 욕지기를 느꼈다. 윤석열과 국민의힘, 존재 자체가 역겨운 농담 같다.

윤석열 탄핵이 인용되고, 강경 지지층 목소리가 꺾일 즈음 국민의힘은 윤석열을 버릴 것이다. 효용가치가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조기 대선을 위해 새로운 주자를 내세우고, 자신들을 중도보수쯤으로 포장하려 할 것이며, 어쩌면 당명과 색깔도 다시 바꿀지 모른다. 그런 뒤에는 새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며 표를 구할 것이고, 질긴 목숨도 이어갈 것이다. 이런 국민의힘이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하는 현실도 역겨운 농담 같다.

이용욱 문화에디터 겸 문화부장

이용욱 문화에디터 겸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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