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캡처
1980년대 마르크스주의 서적 원전 번역 바람을 일으킨 김대웅 전 백산서당 편집장이 지난 9일 암투병 끝에 별세했다고 유족이 14일 전했다. 향년 69세.
1955년 전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전주고와 한국외대 독일어과를 졸업하고 1981년 테다 스코치폴 교수의 <국가와 사회혁명>(까치출판사)을 가명으로 번역하며 번역가로 데뷔했다.
고인은 1985년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가족, 사적 소유, 국가의 기원’을 번역해 <가족의 기원>(아침출판사)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 서적 원전 번역이 금기시됐던 1980년대 사회과학 출판계에서 바람을 일으켰다.
고인은 백산서당, 두레출판사, 한울출판사, 한마당 등 1980년대 이름을 날린 사회과학 출판사들의 잇딴 설립에도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 1980년대 이화여대 앞 주점 ‘목마름’과 연세대 앞 사회과학 서점 ‘오늘의책’에도 관여했다.
고인이 백산서당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마르크스주의 원전을 의욕적으로 번역했다. 고인은 <마르크스·엥겔스 평전>, <독일 이데올로기>, <루카치 미학이론>, <게오르그 루카치의 미학사상> 등을 한국어로 옮겼다.
냉전 종식 이후인 1990년대에는 예술, 고고학, 신화학, 패션, 음식 등 대중문화 전반에 걸친 교양서적 출간에 힘을 쏟았다. 고인의 번역으로 1996년 출간된 <배꼽티를 입은 문화>(자작나무)는 약 20만권이 팔렸다.
고인은 말년까지도 번역과 저술에 매달렸다. 지난해 7월에는 <교과서 밖, 한국사>(아름다운날)를 출간했다. 부인 지연희씨는 “1월 중순까지만 해도 니체의 책을 번역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고인은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국제교류국장을 거쳐 김대중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문예진흥원 심의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을 지내며 ‘진보문화계의 마당발’ ‘문화계 인사의 네트워커’로 불렸다.
고인의 필생의 소망은 마르크스-엥겔스 전집 번역이었다. ‘오늘의 책’ 시절부터 지인이었다는 김재환씨는 “언젠가 꼭 전집을 번역하겠다고 하셨는데…”라고 말했다. 부인 지씨는 “살아있을 때 종종 ‘즐거운 인생이었다. 누워 있어 미안하다. 다들 한잔 하자’고 장례식에 온 이들에게 전해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발인은 지난 12일이었다. 경기도 벽제의 한 나무 밑에 안장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