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일(현지시간) 하마스에 납치됐다 풀려난 이스라엘·미국 이중국적자 사기 데켈첸(왼쪽)이 아내와 상봉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사진이 찍힌 장소를 밝히지 않은 채 이 사진을 공개했다. AFP연합뉴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15일(현지시간) 각각 팔레스타인 수감자 369명과 이스라엘인 인질 3명을 교환했다. 이스라엘이 휴전 협정을 위반하고 있다며 ‘인질 석방 무기한 연기’를 선언했던 하마스가 인질을 제 날짜에 석방하지 않으면 전쟁을 재개하겠다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압박에 물러서며 6차 교환이 성사됐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인질 3명이 가자지구 경계를 지나 이스라엘 영토로 돌아왔다고 밝혔다. 풀려난 이들은 사샤 알렉산드르 트루파노프(29·러시아 이중국적), 사기 데켈첸(36·미국 이중국적), 야이르 호른(46·아르헨티나 이중국적) 등 남성 세 명이다. 이들은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에서 적십자에 의해 인계된 후 이스라엘로 귀환했다.
세 남성은 하마스 대원에 의해 납치된 지 498일 만에 가자지구 인근 이스라엘군 기지에서 가족과 만났다. 텔아비브 소라스키 병원과 텔아비브 인근 라마트간 소재 쉬바 병원으로 나뉘어 입원한 이들은 재활 치료를 받으며 경과를 지켜볼 계획이다. 크게 다치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데켈첸은 아내와 만나 자신이 납치된 지 2개월 만에 태어난 두살배기 셋째 딸의 소식을 처음 듣고 기뻐했다. 그는 딸의 이름을 ‘행운의 새벽’이란 뜻의 ‘샤하르 마잘’로 지었다는 얘기를 듣고는 “완벽하다”고 답했다. 이스라엘 남부 ‘니르 오즈’ 키부츠(집단농장)의 기계공장에서 일하던 그는 2023년 10월7일 하마스가 들이닥치자 아내와 아이들이 집에 안전하게 숨었는지 확인한 후 돌아다니다가 하마스 대원과 마주쳐 납치됐다.
트루파노프는 자신의 아버지가 하마스의 테러 공격으로 숨졌다는 사실을 이날 처음으로 알게 됐다. 그의 여자친구, 어머니, 할머니 등 여성 3명도 트루파노프와 함께 납치됐으나, 2023년 11월 일주일간의 첫 휴전이 이뤄졌을 당시 석방됐다.
호른의 막냇동생 에이탄 호른은 여전히 하마스에 인질로 붙잡혀 있다. 동생은 16개월 전 자신의 집에 놀러 왔다가 함께 납치됐다.

15일(현지시간) 제6차 인질·수감자 교환의 일환으로 석방된 팔레스타인 수감자가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에 있는 유러피안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친척의 환영을 받고 있다. AFP연합뉴스
하마스의 인질 석방이 확인되자 이스라엘은 이어 팔레스타인인 수감자 369명을 석방했다. 이중 36명은 종신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이었다. 석방자 중에는 1·2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인들의 반이스라엘 독립 투쟁)를 주도한 팔레스타인 정치인 마르완 바르구티의 보좌관이었던 아메드 바르구티(48), 국제구호단체 월드비전의 가자지구 책임자이자 9년을 복역한 모하메드 엘할라비(47)도 있었다.
풀려난 수감자들은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 라말라로 각각 나뉘어 집으로 돌아갔다. 알자지라는 석방된 팔레스타인인 4명이 중태 상태로 라말라에 있는 병원에 입원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 나프하 사막 교도소에서 석방된 수감자들은 이스라엘이 교도소 물과 전기를 끊었다고 증언했다. 또 증거없이 유죄 판결을 내리고, 기소 절차 없이 감옥에 가뒀다고 밝혔다. 수감자들은 풀려나기 며칠 전까지도 구타와 학대를 당했다고 증언했다.
휴전이 시작된 지난달 19일부터 이날까지 총 6차례에 걸쳐 이스라엘 인질 24명, 팔레스타인 수감자 약 1100명이 풀려났다.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휴전 1단계에서 인질 33명과 수감자 1904명을 풀어주기로 합의했는데, 이스라엘 당국은 석방 예정자 중 이날까지 이스라엘로 돌아온 인원을 제외하고 6명이 살아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앞서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미국 등 중재국과 함께 휴전 2단계에서 종전과 남은 인질 석방,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완전 철수 등을, 3단계에서 유해 송환과 가자지구 재건 등을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당초 양측은 1단계 휴전 돌입 16일째인 지난 3일부터 2단계 휴전을 위한 협상을 시작하기로 했으나, 2단계 휴전에 대한 세부사항은 여전히 안갯 속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일 전쟁으로 폐허가 된 가자지구를 미국이 소유해 휴양지로 개발하겠다는 전후 구상을 일방적으로 내놓으며 휴전 협상도 꼬이기 시작했다. 42일간의 1단계 휴전은 오는 3월1일 종료된다.
이스라엘 채널12는 네타냐후 총리가 1단계 휴전을 연장하길 원한다고 이날 보도했다. 더 많은 인질을 석방하기 위해서다. 채널12가 입수한 보고서에 따르면 네타냐후 총리는 다음달 1일부터 시작되는 이슬람 금식성월 라마단에 인질 교환이 이뤄지길 바라고 있다. 그는 이스라엘 협상단에 1단계 휴전을 연장하는 것이 하마스에게도 이익이며, 휴전을 더 오래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점을 중재국에 설득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하마스가 종전 및 철군 보장 없이 남은 인질들을 모두 석방할 가능성은 낮다.
극우 성향의 이스라엘 장관들은 전쟁 재개를 주장하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의 오른팔인 미리 레게브 교통장관은 이날 엑스(옛 트위터)에 “살거나 죽은 인질을 모두 돌려받는 동시에 하마스의 정부·군사 역량을 계속 파괴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 카츠 국방장관도 “팔레스타인의 테러 위협이 가자지구에서 제거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엑스에 썼다.
이스라엘 측 협상가들은 당초 2주 전 시작해야 했을 2단계 휴전 협상 논의를 지금이라도 빨리하지 않으면 1단계 합의 이행도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앞서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최근까지도 상대방이 ‘휴전 합의를 지키지 않았다’며 수감자와 인질에 대한 석방 연기를 수차례 반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