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 D 밴스 미국 부통령이 14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에서 열린 뮌헨안보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독일 뮌헨안보회의에 참석한 J D 밴스 미국 부통령이 유럽 지도자들의 면전에서 유럽 민주주의를 맹비난하며 “마을에 새 보안관이 왔다”고 도발하자 유럽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그가 유럽 정치와 이민 정책 등을 비판하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끄는 ‘새로운 미국’에 적응하라고 촉구하는 등 날선 발언을 쏟아내자, 유럽 정치권은 충격에 휩싸인 모양새다.
15일(현지시간) AP통신 등 외신은 전날 밴스 부통령의 연설 후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내정에 개입하지 말라”고 미국에 경고하는 등 격앙된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문제의 발언은 회의 첫날인 14일 밴스 부통령의 기조연설에서 나왔다. 밴스 부통령은 “유럽 전역에서 언론의 자유가 후퇴하고 있다”며 혐오 표현과 극우 사상에 대한 유럽 각국의 규제를 맹렬히 비판했다.
그는 “내가 유럽에 대해 걱정하는 것은 러시아도 중국도 아니며, 다른 어떤 외부 행위자도 아니다”라면서 유럽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을 ‘마을에 새로 부임한 보안관’에 비유하면서 유럽이 새 미국 체제에 적응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정작 참석자들의 관심이 집중됐던 미국의 우크라이나 종전 방안에 대해선 구체적인 언급 없이 “합리적 타결책에 도달할 수 있길 바란다”는 원론적 언급만 했고, 유럽 지도자들의 면전에서 유럽 민주주의를 대놓고 저격한 것이다.
특히 밴스 부통령은 오는 23일 독일이 연방의회 선거를 앞둔 민감한 시점인데도 극우 성향 독일 정당 독일을위한대안(AfD) 대표와 보란듯이 회동하며 독일 정치권을 경악하게 했다. 밴스 부통령은 이날 “민주주의에 ‘방화벽’의 자리는 없다”며 독일 정치권을 비판했는데, ‘방화벽’이란 나치 옹호 등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AfD와 어떤 경우에도 협력하지 않는다는 독일 원내정당들의 원칙을 지칭한다.
독일은 ‘내정 간섭’이자 ‘선거 개입’이라며 불쾌감을 쏟아냈다. 숄츠 총리는 15일 뮌헨안보회의 연설을 통해 “우리의 민주주의를 어떻게 지속할지는 우리가 스스로 결정할 문제”이고 “외부인의 간섭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반발했다.
특히 미국이 조만간 시작될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에서 ‘유럽 배제’를 공식화하며 가뜩이나 유럽 국가들이 ‘동맹 무시’에 분노한 상황에서, 밴스 부통령의 연설은 유럽의 분노에 기름을 부은 분위기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뮌헨에 모인 유럽 당국자들이 밴스 부통령의 일련의 발언을 “부당하고 사실이 아닌 주장”이라며 경악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한 익명의 유럽 외교관은 “완전히 미쳤다”며 “아주 위험하다”고 말했다. 일부 참석자들은 밴스의 연설을 2007년 유럽을 향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진’을 경고했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연설에 빗대기도 했다.
영국 BBC도 밴스 부통령 연설이 “매우 기괴한 20분이었다”고 평하면서 “미국 민주주의가 10년간 (스웨덴 환경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꾸짖음을 버틸 수 있었다면, 여러분들도 일론 머스크의 몇 개월을 견뎌낼 수 있을 것”이라는 밴스의 농담에도 웃음을 보인 참석자가 한 명도 없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