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부가가치세는 곧 관세”라고 주장하면서 한국 정부가 긴장하고 있다. 미국이 한국 정부가 미국산 수입품에 매기는 부가세 10%를 관세로 간주하고 상호관세를 매기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부가세는 미국에 차별적인 세금이 아니다”라고 반박하는 동시에 미국 역시 자국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등 비관세 장벽을 운용하고 있다는 점도 적극 활용해 협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우리는 관세보다 훨씬 더 가혹한 부가세 시스템을 사용하는 나라들을 (대미) 관세를 가진 나라와 비슷하게 여길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에 차별적인 관세를 매기는 국가에 똑같은 세율로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한 셈이다. 이는 결국 향후 각 국가들이 수입산 제품에 적용하는 부가세도 ‘비관세 장벽’으로 간주하겠다는 의미다.
부가세는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170개 넘는 국가가 도입했다. 한국의 부가세율은 일괄 10%다. 미국에는 중앙정부 차원의 부가세가 없다. 대신 주 정부가 모든 상품에 매기는 ‘판매세’(sales tax)가 있다. 세율은 주마다 다른데 최대 11.5%다. 부가세는 생산 단계마다 매겨지지만, 판매세는 최종 소비자 가격에 매겨진다는 차이가 있다.
미국은 외국의 부가세가 미국 기업에 불공정하다고 주장한다.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은 최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미국은 유럽산 자동차에 2.5%의 관세를 매기지만, 유럽은 미국산 자동차에 부가세 20%와 관세 10%를 합쳐 총 30%의 세금을 매기므로 불공평하다고 예를 들었다.
전문가들은 부가세가 수입품뿐 아니라 국산품에도 똑같이 매겨지므로 차별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예를 들어 한국은 미국산뿐 아니라 모든 수입품과 국산품에 10%의 부가세를 일률적으로 부과한다. 미국산 자동차만 특정해서 세금을 부과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이에 미국이 부가세를 근거로 한국에 상호관세를 매긴다면 세계무역기구(WTO)의 최혜국 대우 원칙이나 한·미 FTA 협정 위반일 가능성이 크다.
특히 미국 역시 자국의 수출 기업에 세금 감면, 보조금 지원, 수입 규제 등 비관세 장벽을 운용하고 있어 미국의 ‘상호관세’ 주장은 모순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통상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미국산 쇠고기도 내년이면 한·미 FTA 혜택으로 관세율이 0%가 되는데, 미국은 여전히 한국산 쇠고기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때문에 전문가들은 한국 수출의 약 18%를 차지하는 대미 수출에 타격을 줄이기 위해선 정부가 미국과 ‘주도 받을 수 있는’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양희 대구대 경제학 교수는 “상호관세는 국가마다 다를 뿐 아니라 동일 품목, 같은 국가에 대해서도 서로 보복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 세율이 시기별로 달라질 수가 있다”며 “미국은 4월 초까지 일단 선전포고를 해놓고 그때까지 한국에 답을 갖고 오라는 것인 만큼, 한국 정부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