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즘이라는데 전기차 신차는 왜 쏟아질까

권재현 선임기자
볼보의 프리미엄 소형 SUV ‘EX30’의 주행 이미지. 볼보코리아 제공

볼보의 프리미엄 소형 SUV ‘EX30’의 주행 이미지. 볼보코리아 제공

볼보가 최근 국내 언론 대상 대규모 시승 행사를 열었다.

프리미엄 소형 전기차 EX30 출시를 앞두고 “직접 타고 진면목을 한번 느껴보라”는 취지다.

경기 성남시 분당에서 시승 행사가 열린 경남 김해까지 350㎞ 거리를 직접 EX30을 몰고 왔다는 볼보코리아 이윤모 대표는 연단에 올라 “본사를 끈질기게 설득해 기본 트림(세부 모델)의 경우 4000만원대 가격에 들여왔다”며 “이만한 가격에 이 정도 상품성을 갖춘 차는 단연코 없다고 자신한다”고 강조했다.

김해시에서 울산 울주군까지 왕복 130㎞ 도로를 달려봤다. 5인승 스포츠유틸리티차(SUV)답게 외형도 실내공간도 적당히 넓었다. 속도 확인, 사이드미러, 실내 온도 조절 등 각종 제어 기능을 모두 12.3인치 센터 디스플레이에 몰아넣었다. 시동 버튼도 없었다. 기어 레버를 D(드라이브)로 놓으면 알아서 운행을 시작했다. 헤드업디스플레이(HUD)도 없다. 공간 활용을 극대화한다며 좌우 유리창 개폐 버튼 또한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 센터 콘솔박스 앞으로 옮겨놨다. 구조가 낯설어 시승하는 내내 혼돈을 겪었다.

EX30의 내부. 웬만한 기능은 이 스크린 화면에 다 들어가 있다. 볼보코리아 제공

EX30의 내부. 웬만한 기능은 이 스크린 화면에 다 들어가 있다. 볼보코리아 제공

시속 100㎞까지 단 5.3초 만에 도달하는 역동성은 꽤 만족스러웠다. 급가속과 급제동을 오가며 거칠게 몰아봤는데, 차체가 거의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쭉 뻗어 나갔다.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는 복합 기준 351㎞(환경부 기준)다.

운전석 메모리 기능부터 360도 카메라, 주행 중 주의 산만과 졸음운전 등 운전자의 움직임을 파악해 주의를 시키는 ‘운전자 경고 시스템’, 경사로 감속 주행 장치, 사각지대 경고, 앞차와의 간격과 차선을 유지하며 주행하도록 돕는 파일럿 어시스트, 1040W 하만카돈(Harman-Kardon)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 96% 이상의 한국어 인식률을 자랑하는 음성 인식, 티맵모빌리티와 함께 개발한 5G 기반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플랫폼에 이르기까지 꼭 넣어야 할 기능은 빠짐없이 챙겨놨다.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이라는데, 전기차 신차가 쏟아지고 있다. EX30 말고도 국내외 완성차 제조사들의 다양한 모델들이 연말까지 줄줄이 출격 대기 중이다. 기아는 이달 말 스페인 타라고나에서 ‘2025 기아 EV 데이’를 열고 EV4, PV5 등 신차 2종과 콘셉트카 1종(콘셉트 EV2)을 공개할 예정이다. EV4는 EV6와 EV9, EV3에 이어 기아가 국내 시장에 네 번째로 선보이는 전용 전기차 모델이다. EV3와 함께 전기차 대중화를 이끌어갈 전동화 세단으로 꼽힌다.

현대차도 ‘아이오닉 9’을 지난 13일 출시했다.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GMP 기반의 대형 전기 SUV로, 동급 최고 수준의 실내 공간을 갖췄고, 110.3kWh(킬로와트시) 배터리를 탑재해 현대차 전기차 제품군 중 가장 긴 532㎞의 1회 충전 주행거리를 달성했다는 설명이다.

아이오닉 9. 현대차 제공

아이오닉 9. 현대차 제공

다음 달에는 제네시스 GV60의 부분 변경 모델이 나온다.

벤츠도 가세한다. 전기 SUV 모델 EQE SUV의 고성능 트림인 ‘메르세데스-AMG EQE 53 4MATIC+ SUV’와 EQE SUV 트림 제품군 중 유럽 세계표준자동차시험방식(WLTP) 기준 가장 긴 주행거리를 자랑하는 ‘EQE 350+ SUV’가 연내 출시된다.

폭스바겐코리아는 소형 전기 SUV 2025년형 ID.4의 고객 인도를 개시한다고 지난 10일 밝혔다. 최고 출력 286마력(PS), 최대토크 55.6kg.m의 동력성능을 갖췄고, 1회 충전 주행거리가 기존 모델보다 늘어난 복합 424㎞(도심 451㎞·고속 391㎞)에 이른다. 폭스바겐코리아는 쿠페형 전기 SUV ID.5의 고객 인도도 오는 4월 말부터 시작할 계획이다.

2025년형 ‘ID.4’. 폭스바겐코리아 제공

2025년형 ‘ID.4’. 폭스바겐코리아 제공

경기 침체 여파로 내수 시장이 잔뜩 얼어붙은 지금, 캐즘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도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를 계속해서 내놓는 건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전동화에 미온적이던 내연기관 중심의 완성차 업계가 테슬라, BYD(비야디) 등의 기세에 놀라 보급형 전기차 출시를 기획하고 생산공장 건립 등 대대적 투자에 뛰어든 게 2020~21년 무렵이다. 신차 기획부터 연구개발 과정을 거쳐 출시에 이르기까지 보통 3~4년이 걸린다고 할 때 자동차 제조사로선 이제 그 결실을 볼 시점이 도래한 셈이다.

이탈리아 슈퍼카 브랜드 페라리는 오는 10월 첫 전기차를 공개한다. 베네디토 비냐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4일(현지시간) 실적발표 이후 진행한 콘퍼런스콜에서 “우리는 전기차로 전환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전기차를 (라인업에) 추가하는 것”이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2019년부터 하이브리드 모델을 선보인 페라리가 올해 드디어 전기차 시장에 도전장을 내미는 것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여건은 별로다. 상한가를 달리던 세계 전기차 시장이 2023년 하반기부터 한풀 꺾이며 눈에 띄게 수요가 둔화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들어 캐즘이 본격화되는가 싶더니 예상보다 길어질 조짐마저 보인다.

국내 시장도 마찬가지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국내 신차 판매 대수는 전년 대비 6.5% 감소한 163만5000대에 그쳤다. 2013년 이후 가장 부진한 성적표다. 수입 전기차(한국수입자동차협회 집계)도 지난달 635대가 팔리며 지난해 동월 대비 22.7% 감소했다. 전월(2666대) 대비 감소율은 무려 72.6%에 달했다.

사정이 이렇다고 해서 수년간 공들인 제품을 거둬들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국산차와 수입차 구분 없이 전기차 할인 행사가 잇따르고 있는 배경이다. 불황일수록 소비자들은 가격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BYD 등 저렴한 모델을 내세운 중국 전기차 브랜드가 지난달 국내에 상륙한 것도 한몫했다.

볼보코리아는 지난 3일 전기차 ‘EX30’을 국내에 출시하며 사전 계약 때보다 최대 300만원 안팎 가격을 낮췄다. 기본 트림이 4755만원, 상위 트림이 5183만원이다. 유럽(약 5400만원)과 미국(약 6600만원)보다 많게는 1000만원 이상 저렴한 수준이다.

폭스바겐은 향후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중국 전기차의 저가 공세에 맞서 2만유로(약 3000만원)짜리 전기차 모델 ‘ID.1’을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2027년 생산에 들어간다는 목표다.

SNE리서치는 “2025년은 전기차 시장의 성장 속도가 국가별 정책 변화에 따라 차별화되는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며 “완성차 업체들은 단기적인 정책 리스크를 고려한 대응 전략을 수립하는 동시에, 2026년 이후의 시장 반등을 대비한 기술 혁신과 생산 체계 확립에 집중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볼보코리아가 최근 마련한 시승 행사의 코스 반환점에서 만난 EX30 전시 차량들 모습. 권재현 선임기자

볼보코리아가 최근 마련한 시승 행사의 코스 반환점에서 만난 EX30 전시 차량들 모습. 권재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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