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불안한 보안관’의 시대

김광호 논설위원
J D 밴스 미국 부통령이 지난 14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에서 열린 뮌헨안보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J D 밴스 미국 부통령이 지난 14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에서 열린 뮌헨안보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서부영화 기원은 19세기 미국의 ‘10센트 소설(dime novel)’이다. 25센트짜리 고급 잡지 대신 저질 종이에 찍는 10센트짜리 펄프 매거진에 주로 실려 펄프 픽션(pulp fiction)이라고도 한다. 무법천지인 서부 개척시대를 배경으로 악당을 물리치고 정의를 세우는 영웅담이 주된 구조인데, 보안관은 그 대표 격으로 고립되고 위험에 처한 마을의 평화를 지킨다. 서부영화를 좀 봤다면 영화 <하이눈>에서 홀로 악당들을 처치하고 떠나는 게리 쿠퍼나 전설이 된 실존 인물 와이어트 어프의 이름 정도는 기억할 것이다.

J D 밴스 미국 부통령의 지난 14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안보회의 기조연설이 파장을 낳고 있다. 그는 “마을에 새 보안관(new sheriff)이 왔다”고 ‘트럼프 미국’의 귀환을 선전포고 하듯 알렸다. 밴스 부통령은 “유럽 전역에서 언론 자유가 후퇴하고 있다”며 가짜뉴스 규제를 “검열”이라고, 극우 정당 배제를 “민주주의 파괴”라고 맹비난했다. 유럽은 경악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15일 “우리의 민주주의를 어떻게 지속할지는 우리가 결정할 문제”라며 “간섭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유럽 외교관들 사이에선 “완전히 미쳤다”는 반응이 터져나왔다.

미국이 ‘세계의 보안관’으로 존중받은 것은 2차 세계대전 후 마셜플랜처럼 자유민주주의 수호의 리더로 확고하게 행동할 때였다. 문제는 ‘새 보안관’이 세계가 기대하는 서부영화 속 정의로운 보안관과 거리가 멀다는 점일 게다. 평화 대신 갈등·파괴를 조장하는 극우조차 ‘민주주의’로 옹호하고 ‘내정 간섭’을 노골화하겠다는 것이니, 굳이 빗대자면 오히려 악당들과 결탁하는 ‘불량한 보안관’(rogue sheriff)일까.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은 “새 미국 행정부는 우리와 매우 다른 세계관을 갖고 있다”며 “국제사회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지난 세기 나치즘·파시즘 발호로 세계대전의 참화를 겪은 트라우마를 감안하면 유럽의 불안은 당연하다. 하지만 국제 정치는 힘이 현실인 세계다. 밴스 부통령의 ‘새 보안관’ 선언은 막무가내 트럼프 시대의 상징어로 끊임없이 불려 나올 것이다. 한국은 이 ‘불안한 보안관’ 시대를 헤쳐갈 실마리조차 아직 풀지 못하고 있어 우려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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